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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빠진’ 밸류업…수혜라던 금융주 고개 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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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기대 못미친 당국 발표

이르면 다음 달부터 상장사들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에 나선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수준을 점검하고, 이를 제고하는 방안을 한국거래소에 연 1회 등 주기적으로 공시할 수 있다. 2일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가이드라인(초안)을 내놨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한마디로 상장사의 ‘밸류업 종합보고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개요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 평가 ▶소통 등 목차별 작성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이 벤치마킹한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과 달리 비(非)재무지표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지표 중 하나로 꼽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주주자본비용(COE), 자기자본이익률(ROE) 같은 재무지표뿐이 아니라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요소까지 개선돼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예컨대 쪼개기 상장(모자회사 중복 상장),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회적 비판이 나오는 사안에 대해선 미리 주주들과 소통하라는 취지다.

투자자는 상장사의 밸류업 ‘목표설정’과 ‘계획수립’ 단계에 관심이 많다. 가이드라인은 기업들이 ‘ROE 3년 평균 10% 이상 달성’처럼 계량화된 수치로 중장기 목표를 제시하라고 권장한다. ‘계획수립’ 단계에선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연구개발(R&D) 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과 배당, 비효율적 자산 처분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업의 목표 설정(예측정보)에 대해선 면책 제도를 적용한다. 상장사가 목표 달성에 실패했더라도 예측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면 ‘불성실 공시’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이번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다. 상장사의 밸류업 공시 참여 여부는 물론 핵심지표 선정 등 작성 방법도 기업의 자율의사에 맡겼다. 대신 모범 납세자 선정 우대 등 인센티브(당근)가 기업의 참여를 이끌 유인책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기대하는 ‘당근’인 세제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너무나 많은 공시 항목을 제시하면서 선택과 자율에 맡긴다고 하니 ‘구색맞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시도 일단 실망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그동안 밸류업 수혜주로 지목됐던 보험·금융·증권 업종은 이날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이날 가이드라인 발표는 세제 혜택 구체화 등을 기대했던 시장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결국 배당소득 분리과세나 일본처럼 개인종합자산관리게좌(ISA) 활성화를 위한 혜택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움직여야 시장도 호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업계는 환영하는 모습이다. 이날 세미나에 기업 측 대표로 참석한 박현수 고영테크놀러지 경영기획실장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와 같은 강제적인 기준을 주면 기업은 형식적으로만 맞출 수밖에 없다”며 “중·장기계획을 갖고 관념을 바꿔나가는 방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는 “중장기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세제 혜택과 국민연금의 지원사격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최종 의견 수렴을 거쳐 5월 중 확정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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