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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백옥쌀 막걸리, 제짝은 들기름 막국수였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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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호 21면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용인지역 맛집 ‘고기리막국수’에선 원래 ‘마루나 막걸리’를 팔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 들기름 막국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페어링을 시도했고, 결과는 찰떡궁합이었다. [사진 이승훈]

용인지역 맛집 ‘고기리막국수’에선 원래 ‘마루나 막걸리’를 팔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 들기름 막국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페어링을 시도했고, 결과는 찰떡궁합이었다. [사진 이승훈]

전통주 시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는 좋은 술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승훈 전통주 전문가가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좋은 전통주를 소개하고, 그에 잘 맞는 음식을 매칭하는 일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통주와 음식은 ‘용인’이라는 지역성과 MZ세대 취향을 잘 살린 술과 음식이다.

바를 아(雅), 나아갈 토(夲). 2021년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술 빚기를 함께 배우던 권도연 대표와 박혜찬 이사가 창업한 용인 동백의 새내기 양조장 ‘아토’의 상호명이다. 권 대표는 명품 온라인 유통업을, 박 이사는 캐나다에서 외식업을 하다 귀국해 광고영상 촬영 업계에 있었으니 전통주와는 전혀 관련 없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유통업 경험이 있고 꾸준한 성격으로 양조가 적성에 잘 맞고, 박 이사는 전통주 업계에서 광고영상 촬영으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용인 재배 쌀과 물, 누룩 등 발효제만 사용

‘들기름 막국수’ 원조집 고기리막국수. [사진 이승훈]

‘들기름 막국수’ 원조집 고기리막국수. [사진 이승훈]

2022년 초 연구소를 수료한 두 사람이 양조장 창업에 들어가면서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이다. 대형아파트 단지 인근 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 카페 자리인데, 임대료도 높고 상식적으로 전통주 양조장과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게 ‘신의 한수’였다. 동백동은 서울에 직장을 둔 젊은 부부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주중에는 젊은 주부들이,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산책과 소비를 즐긴다. 아토양조장은 접근성이 좋은 산책로에 위치했고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이 지역에선 유일무이한 컨텐트를 가졌기에 바로 주목을 끌었다. 동네 주민들이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듯 막걸리를 사가면서 꾸준히 매출이 오르고 있다.

아토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술은 현재 ‘마루나 막걸리’ ‘마루나 그린’ ‘마루나 약주’ 3종이다. ‘마루나’란 ‘산마루에 나다’를 줄인 단어로 ‘산 정상에 오르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막걸리들은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사카린 등의 감미료를 쓰고, 신맛을 내기 위해 구연산 등 산미료를 써서 쉽게 맛을 내지만 우리는 ‘아토(바르게 나아가다)’하며 첨가물 따위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쌀 고유의 단맛과 매력을 살려 ‘마루나(산 정상에 오르다)’ 하겠다”고 한다. 뭔가 군대 암구어 같기도 하지만 좋은 술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보인다.

용인 도심에 위치한 아토양조장. [사진 이승훈]

용인 도심에 위치한 아토양조장. [사진 이승훈]

주력 제품은 알코올도수 7도의 ‘마루나 막걸리’다. 용인에서 재배한 백옥쌀과 물, 그리고 누룩 등 발효제 외엔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에 용인 지역에서 키운 허브 레몬밤과 애플민트가 부재료로 들어가면 ‘마루나 그린’이 된다. 마루나 막걸리는 충분한 발효를 통해 탄산은 날리고 은은한 쌀의 단맛과 미세한 산미를 강조했다. 마셔보면 수도권 지역 막걸리 특유의 탄산감이 없고 매우 잔잔한 부드러움이 느껴지지만 마지막에는 혀 끝에 남은 미세한 산미가 또 단맛을 잡아줘 여러 잔 마셔도 질리지 않고 꿀떡꿀떡 쉽게 들이키게 된다. ‘마루나 그린’ 역시 알코올도수 7도로 기본 특성은 마루나 막걸리와 같지만 두 종류 허브의 쌉쌀함과 복합적인 맛과 향이 어우러져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같은 막걸리가 허브의 첨가 유무로 이렇게 서로 다른 개성을 갖게 되다니 비교 시음도 재미지다. ‘마루나 약주’는 막걸리의 맑은술 버전이다. 알코올도수 13도의 약주로 보통의 막걸리를 멥쌀로 빚는데 반해, 이 술은 찹쌀을 사용해서 단맛도 공존해 한식 안주들과 두루 잘 어울린다.

메밀쌀, 반죽 직전 하루에도 수십 번 제분

이중 마루나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 용인 고기동에 있는 ‘고기리막국수’를 방문했다. 원래 이 매장에선 이미 다른 브랜드의 막걸리를 취급하고 있었지만, 사전 양해를 구하고 특별히 맛보기로 했다.

고기리막국수는 2012년 유수창·김윤정 부부 대표가 오픈한 곳으로 ‘들기름막국수’의 원조다. 메밀 원재료와 면발 그리고 육수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지속해 지금도 맛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주일마다 도정회사에서 메밀쌀을 받아 섭씨 5도로 보관하고 반죽 직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직접 제분해서 사용한다니 그 정성이 참 대단하다. 막걸리와 막국수. 전통적인 술과 음식을 요즘 MZ세대 취향에 맞게 개발하고 노력하는 모습에서도  두 집의 궁합이 잘 맞는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들기름 막국수는 메밀 면 위에 들기름을 뿌려주고 잘게 자른 마른 김과 거칠게 부순 들깨를 얹어 나오는데 메밀과 들기름 그리고 나머지 재료들이 조화를 이뤄 까끌까끌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다. 구수한 향과 감칠맛까지 받쳐줘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숨쉴 겨를도 없다. 면이 3분의 1 정도 남았을 때 육수를 부어 먹으면 이 또한 별미다.

들기름 막국수를 살짝 휘저은 뒤 한 젓가락 맛봤다. 메밀 면답게 툭툭 끊어지는 식감과 들기름 등 재료의 향과 맛을 즐긴 다음 시원한 마루나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절제된 막걸리의 단맛과 메밀 면이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개성 강한 들기름·마른 김 등 재료들의 맛에 막걸리가 묻힌다 싶을 때, 막걸리 끝맛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산미가 들기름의 살짝 느끼한 맛을 잡아주니 제대로 된 궁합이다. 아스파탐 등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의 끝맛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쓴맛이 없어 메밀 면과 더욱 잘 어울린다. 한 젓가락, 또 한 탁배기. 어느새 막걸리와 국수가 순서 없이 목을 타고 술술 넘어간다. 역시 막국수에는 막걸리가 답이다!

사실 ‘고기리막국수’는 대기 줄이 길기로 유명한데, 이 페어링을 집에서도 편히 즐길 수 있다. 이집의 들기름막국수가 밀키트로 출시돼 있고, 마루나 막걸리는 용인 쌀인 백옥쌀을 사용하는 지역 특산주로 온라인 구입이 가능하다.

이승훈 전통주전문가.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외식조리경영학부 겸임교수를 비롯해 막걸리학교, 한식진흥원 등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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