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보이지 않아 슬픈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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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비키퍼’는 킬링타임 액션물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은퇴한 전직 요원이/ 혼자 힘으로/ 범죄의 배후를 파헤쳐/ 악(惡)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도입부다. 조용히 살아가던 애덤 클레이(제이슨 스타뎀)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유일한 친구였던 퇴직 교사 엘로이즈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다.

엘로이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보이스 피싱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기 전 노인 우울증 정도로 짐작한 클레이는 엘로이즈의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외로운 일이죠. 어느 나이가 되면 투명인간처럼 더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돼요.”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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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가 마음을 파고든 것은 최근의 깨달음 때문이었다. 운동시설에 다니던 어느날 각성하게 되었다. 수건 수거 같은 궂은 일을 하는 이가 나이 많은 어르신이란 것을. 그가 복대를 차고 있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에서도 일하시는 분 대부분이 경비부터 청소까지 어르신들이었다. 이 얘기를 꺼냈더니 한 변호사가 말했다. “가성비 좋은 실비집들도 이모님들 없으면 가격 유지하기 힘들 걸요.”

아, 그분들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구나. 그분들이 있어서 이 사회가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구나. 그렇다. 노인 인구,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이 사회 곳곳을 떠받히고 있었던 것이다.

클레이는 말한다. “아이가 당하면 부모가 나선다. 하지만 노인이 당하면 혼자서 말벌들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우대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등하게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선거 때만 잠깐 무대에 올렸다가 선거가 끝나면 투명인간으로 돌아가게 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한 사회의 수준은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