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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지역별 라조기에 담긴 중국음식 천태만상

중앙일보

입력

중국 쓰촨식 닭고기 요리 라쯔지(辣子鷄). 튀긴 닭고기를 고추, 두반장, 화자오, 마늘, 생강 등과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든 요리다. 바이두(百度)

중국 쓰촨식 닭고기 요리 라쯔지(辣子鷄). 튀긴 닭고기를 고추, 두반장, 화자오, 마늘, 생강 등과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든 요리다. 바이두(百度)

라조기(辣子鷄)는 우리한테 익숙하기는 하지만 친숙한 중국요리는 아니다. 한국의 중국음식점 메뉴에서 흔히 볼 수 있기에 눈과 귀에는 낯설지 않지만, 탕수육처럼 자주 먹어 입이 그 맛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반면 중국말로 라쯔지라고 하는 라조기는 중국에서는 비교적 흔한 음식이다. 참고로 라조기는 산둥 사투리와 한국식 중국어가 합쳐진 이름이다. 어쨌든 이 대목에서 "중국에서 라쯔지라는 음식 별로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싶은데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흔하기는 하지만 막상 라쯔지라는 이름의 음식은 생각만큼 자주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유는 음식은 비슷하지만 이름은 다른, 변형된 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막 친 닭고기를 빨간 고추와 함께 볶은 꿍바오지딩(宮保鷄丁)이 그런 예다. 라쯔지는 매운 고추(辣子)와 닭(鷄)을 함께 볶았기에 랄자계(辣子鷄), 즉 라쯔지와 요리의 기본 개념이 거의 비슷하다.

다양한 요리가 라쯔지에서 변형된 까닭은 이 음식이 만들기가 비교적 간단할 뿐 아니라 역사도 오래됐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요리법을 바꿔야 질리지 않았고 특히 음식점에서는 변형을 통해 고급화를 시도해야 했기에 라쯔지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는 꿍바오지딩 같은 요리가 생겨났을 것이다.

요점은 라쯔지가 그만큼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라쯔지가 대중적이면서 서민 친화적이라는 흔적이 또 있다. 중국에는 쓰촨, 산둥, 구이양(貴陽)처럼 지역 이름이 붙은 라쯔지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곰탕이나 순대와 비슷하다.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기에 나주, 현풍, 해주 등 지역 특산 곰탕이 생겼고 신의주, 병점, 용인 순대 등등 동네별 순대가 등장한 것과 닮은꼴이다.

한국 곰탕이나 중국 라쯔지 모두 지역에 따라 요리 방법이나 맛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중국의 경우 흥미로운 부분이 또 있다. 라쯔지의 유래설에 따라 지역별 음식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먼저 라쯔지는 쓰촨성에서 생겨나 중국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간 음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쓰촨 라쯔지는 18세기 중반의 청나라 때 쓰촨성에서 일어난 반란진압 전쟁인 금천(金川)전투 와중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쓰촨은 지역이 험난한 관계로 반란을 진압하는데, 수개월이 걸렸고 전투에 참여한 청나라 병사들이 피로에 지치고 무기력증에 빠졌다. 특히 쓰촨 지방 특유의 날씨, 더울 때는 후텁지근하며 습하고 기온이 떨어지면 오슬오슬 뼛속을 파고드는 냉기에 못 견뎌 했다.

이를 본 장군이 매운 고추가 습한 기운을 제거하고 열을 낸다는 사실에 착안해 진중 요리사를 시켜 매운 고추와 닭을 볶아 병사들에게 먹이게 했다. 먹고 기운을 차린 병사들이 마침내 반란을 진압했고 이후 민간에 퍼져 라쯔지 요리가 됐다는 것이다. 유래설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분명한 것은 쓰촨요리가 고추와 화쟈오(花椒)를 많이 쓰는 이유, 덧붙여 라쯔지가 상류층이 아닌 병사들이 먹었던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에서 비롯됐음도 여기서 알 수 있다.

닭고기와 고추를 매콤하게 볶아낸 산둥식 라쯔지. 겉으로는 안동찜닭과 비슷한 비주얼이다. 소후(搜狐)

닭고기와 고추를 매콤하게 볶아낸 산둥식 라쯔지. 겉으로는 안동찜닭과 비슷한 비주얼이다. 소후(搜狐)

쓰촨과 함께 라쯔지로 유명한 곳이 산둥성이다. 여기에도 관련 스토리가 있는데 청나라 황실의 요리사가 은퇴 후 고향인 산둥으로 돌아와 음식점을 열었다. 황실 주방인 어선방(御膳房)에서 다년간 경험하고 연구한 요리법을 살려 라쯔지를 만들었는데 수탉을 이용하고 고추로 맛과 향, 색감을 살려 황실 요리답게 고급화했다. 그러면서 고추의 매운맛으로 땀을 흘리고 양기가 충만한 수탉이 더해진 보양 음식으로 소문나면서 음식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역시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이 기원설에는 산둥요리가 북경요리, 즉 황실 요리와 통한다는 사실이 강조돼 있다. 한국 라조기가 중국음식점 차림표 중 가격이 상위권인 이유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둥 라쯔지 역시 기본은 대중적인 음식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리재료인 수탉은 닭고기 중에서 가장 저렴한 재료였으니 아무리 황실 요리사가 발전시켰다고 미화해도 서민 음식일 수밖에 없다.

쓰촨, 산둥 라쯔지와 함께 중국에서는 구이저우성의 구이양(貴陽) 라쯔지도 유명하다고 한다. 고추 대신 두반장과 마늘, 생강, 후추, 파 등을 써서 맵고 찰지면서 맛있는 냄새와 함께 색감이 좋다는 것이 타지역 라쯔지와의 차이라고 하는데 실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만들어지고 알려진 음식이라고 한다. 그것도 한 음식점에서 중국 공산혁명 유적지 방문객들에게 국공내전 때 누가누가 먹었다고 선전하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돈을 보고(向錢看) 전진하라는 개혁개방 시기의 속설처럼 공산혁명까지 상업화에 응용한 셈이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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