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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상범의 글로벌 포커스

홍해 공격받자 중국 TCR로 물류 몰려…한국 기업 어려움 가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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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년 11월 19일 친이란 예멘 후티(Houthi) 반군의 홍해 화물선 나포에서 시작된 ‘홍해 발 물류대란’이 4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확산하고 있다.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머스크라인 등 글로벌 해운사들이 홍해항로 운항을 중단하거나 운항 횟수를 줄임에 따라 홍해항로를 통해 동유럽·서유럽, 미국 동부지역으로 수출입 화물을 나르던 한국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금융위기(2008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2010년), 동일본 대지진(2011년), 미·중 무역 분쟁(2018년~), 코로나19 팬데믹(2020~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2022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년~)에 이어 후티 반군에 의한 홍해 물류 대란까지. 몇 년 간격으로 발생하는 세계적 사건과 사고로 인해 한국경제는 끊임없는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후티 반군 촉발 홍해 물류대란
4개월째 넘기며 해운운임 껑충
교역 의존하는 한국 경제 타격
대체 경로 위한 국제협약 필요

‘컨테이너 해운지수’ 4배로 폭등

친이란 후티 반군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로 연결되는 홍해를 지나던 영국 선적 화물선 루비마르호를 공격해 이 선박은 지난 달 결국 침몰했다. [EPA=연합뉴스]

친이란 후티 반군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로 연결되는 홍해를 지나던 영국 선적 화물선 루비마르호를 공격해 이 선박은 지난 달 결국 침몰했다. [EPA=연합뉴스]

언뜻 보면 수천㎞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사고가 한국 경제에 무슨 영향을 끼치겠냐 싶겠지만, 각종 자원을 수입해 가공·수출하는 대외교역 비중이 높은 한국 입장에서 지구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사고도 나비효과를 일으켜 태풍만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이번 홍해 발 물류대란은 코로나19 확산과 미·중 전략 갈등에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단절에 따른 물가 상승 추세가 여전한 상태에서 벌어졌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터진 두 개의 전쟁과 겹쳐 발생하다 보니 한국 기업들에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안정세로 돌아서던 국제 해운 운임은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나포가 발생한 이후 급격한 상승세로 전환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국내 컨테이너 해운지수(KCCI)는 사건 발생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1262p) 대비 지난 3월 말에는 1.84배까지 상승한 상태다.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지난 1월 말에는 최고 2.24배(2831p)까지 상승했다.

홍해항로를 이용하는 지중해와 유럽, 북미 동안(東岸) 항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중해 항로의 경우 운임이 지난해 11월 중순 대비 1월 말 최고 4.14배까지 상승했고, 최근까지도 2.99배 수준을 기록 중이다. 그나마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북미 동안과 유럽 항로의 경우에도 각각 2.57배와  3.27배까지 상승했다.

작은 변동에 운임 민감하게 반응

항만·선박 등 물류 인프라 및 장비는 단기간에 추가 공급이 어려운 공급 경직성이 있다. 하지만 물류 수요는 상대적으로 탄력적이어서 작은 변동에도 운임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특정 지점 또는 항로에서 문제가 발생해 먼 거리를 우회하거나 정체가 발생하면 인프라 및 장비의 회전율이 저하된다. 회전율 저하로 인해 선박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공간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에 따라 급격한 운임 상승이 유발된다.

게다가 물류산업은 농업부터 반도체산업까지 화물의 이동을 동반하는 모든 산업의 수출입을 비롯해 지역 간 이동을 전담하고 있다. 물류산업에서 운임이 상승하면 곧바로 모든 산업의 원가 상승을 유발하고, 특정 국가를 넘어 글로벌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발생한 미국 서안 항구의 정체가 미국 전역의 수급 불안정과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항구 정체에 따른 선박의 운항 정체가 해운 운임 상승을 넘어 전 세계적 물가 상승으로 확산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이런 사례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수출입 기업들 부품 조달 어려움

홍해 발 물류대란은 기업 활동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자동차·가전·배터리 등은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해 동유럽 지역에서 조립하고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우리 기업들의 경우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으면 생산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과거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대체 경로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러 경제제재로 TSR 이용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중국횡단철도(TCR)가 유일한 대체경로로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후티 반군이 중국 국적 선박까지 공격하는 상황이라 중국은 자국 기업의 수출 대체경로로 TCR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의 TCR 이용 기회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희망봉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선박 회전율 저하로 공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사는 급격한 운임 상승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반면, 운임 상승에 따른 피해는 화주를 대행해 수출입 물류를 대행하는 국제물류 주선기업(Forwarder)과 화주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주선기업들은 장기계약을 통해 운송계약을 체결한 경우 선사들이 운임을 2~4배까지 올려도 화주들이 이를 고려해 주지 않아 적자 경영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론 화주들도 물류비 상승 및 납기 지연 등으로 경쟁력에 직격탄을 맞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북극항로 등 대체 루트 개발 나서야

더 심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 등이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최고점을 기록한 지난 1월 말 대비보다는 일부 하락세를 보이는 해운 운임이 다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서 유럽 및 미국 동부에서 아시아권 기업을 통해 수입하던 수입선을 조달이 원활한 다른 기업으로 바꾸거나 다변화할 경우 한국의 교역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자연재난과 국제정세 급변에 따른 물류 네트워크의 단절 상황은 개별 국가나 기업이 나서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다양한 대체경로 확보를 통해 국제물류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사태 발생 시 신속하게 영향 범위를 파악해 대응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피해 기업들이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해상 운송의 대체경로 확보를 위해 국제협약 또는 양자 협약 등을 통해 주요 물류경로 단절 시 대륙철도에 대한 긴급 이용권 보장을 추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부각하고 있는 북극항로 개발에도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로는 급격한 운임변동 시 국제물류주선기업들이 화주에게 추가 운임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선사의 과도한 운임 인상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원자재 및 소재 확보 중심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급망 안정화 기금의 지원 범위를 공급망 단절에 따른 급격한 운임 변동에 따른 기업의 피해 방지에 활용하도록 확대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선임연구위원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