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민의 마켓 나우

M&A 혹한기가 계속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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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팬데믹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충격이 막 시작되던 2020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거래금액 기준으로 전년 대비 거의 반토막인 30조 원대로 위축됐다. 그 뒤 초저금리에 기반을 둔 주식 시장의 호황과 플랫폼 기업 등 이른바 ‘뉴 이코노미’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붐을 이루면서, 2021년에는 전년의 거의 3배 가까운 100조원 가량이 거래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지난해 M&A 시장은 다시 40조원 규모로 추락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의 확산, 팬데믹 기간에 있었던 과도한 투자의 후유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초 6조 원대 가격의 해운·물류 기업 HMM의 매각이 불발된 것은 이런 시장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조원 이상 가격의 초대형 거래를 의미하는 ‘빅딜’이 사라지면서, 시장의 역동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M&A 시장을 이끌어 왔던 시장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몸을 사리고 있다. 한때 기업을 쇼핑하듯 사 모으던 대기업들의 경우 주력 산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대규모 투자를 대비해야 해서 M&A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과거 몇 년간 과감하게 M&A를 통해 인수했던 회사들이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경우도 많다.

사모펀드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수 자금을 펀딩하는 것 자체부터 쉽지 않다.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조차 사모펀드에 출자해 줄 여력이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인수금융 대출의 금리 또한 너무 높아진 상태다. 웬만큼 매력적인 매물이 매우 적정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는 한, 선뜻 투자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M&A 시장의 영향을 받아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투자비 회수도 더디기만 하다.

올해 초부터 미국의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2021년의 급격한 회복이 이른바 ‘오버슈팅(overshooting)’으로 이어졌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시장의 참여자들이 그 후폭풍을 지금 한창 겪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 인하가 하반기에 시작되더라도 시장의 회복은 내년 이후에나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전 세계 M&A 시장도 지난 5년간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지만, 그 진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건전하고 활력 넘치는 경제에선 기업 설립과 투자 유치, M&A를 통한 기업 거래가 막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일어난다. 현재 우리나라 M&A 시장 상황은 여러 모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