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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원경의 이코노믹스

전방위적 정부 지원으로 포용적 원격 의료 적극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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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디지털 헬스케어 성장 꾀하려면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정부는 19년간 3058명으로 고정됐던 의과대학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의사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증원을 탄력적으로 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 그동안 의사들은 의대 증원 확대는 물론 의료 안정성을 이유로 원격 의료에 대해서도 반대 견해를 피력해 왔다.

세계적으로 원격 의료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함께 성장해 왔다. 디지털 헬스케어 없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왜 진화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의료 행위의 모든 자료를 빅데이터화할 수 있다. 의료 대상이 질병 치료 외에 질병의 예방과 건강 관리로 무게 중심이 움직일 수 있다. 의료의 주체는 모든 산업에서처럼 환자와 고객 중심으로 변화한다. 그 사이에 웨어러블 기기, 모바일 헬스 앱, 센서,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료기관도 결국에 가서는 이런 원격 플랫폼과 기기 이용을 확대할 것이다.

헬스케어 디지털화는 새 트렌드
시장 내 한국 비중, 1%로 미미

디지털 기기·원격 치료 활용해
비용 절감, 의료 접근성 높여야

고령화 속 의료 인력 부족 문제
디지털 헬스 활용해 풀 수 있어

디지털 헬스 시장, 연평균 25% 상승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디지털 헬스케어였다. 헬스케어의 개인화, 디지털화, AI화는 거부할 수 없는 핵심 트렌드로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강화는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의료진이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도록 해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의하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로 여전히 미미하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및 유럽의 시장 규모는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점유율이 상당하고 성장률도 높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크게 디지털 건강 및 운동(Wellbeing & Fitness), 디지털 치료 및 관리(Treatment & Care), 원격 진료(온라인 의사 상담) 등 3개로 구성된다. 디지털헬스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800억 달러에서 2028년 5500억 달러로 연평균 25% 상승하는 성장 산업이다. 운동과 다이어트, 영양 관련 애플리케이션 성장세는 둔화하는 반면, 특정 질병과 의료기관 및 의료보험 관련 앱 활용은 늘어나는 경향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디지털 헬스케어의 현황과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부각해야 한다. 비록 국내에서 바이오 헬스는 기존 의료기기와 제약 산업의 후발주자 입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빅데이터 및 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2017)’ ‘국제 공통 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2022)’을 발간하며 글로벌 디지털 혁신 의료기기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수집한 대규모 의료데이터와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이 있어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제품 개발부터 글로벌 임상 검증과 세계 수요 확대, 경제성 확보 측면까지 전방위적 정부 지원책 강화가 필요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등 공공부문은 디지털 헬스케어 해외 진출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해외에 디지털 헬스 기기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에서 먼저 개발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기기의 우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국내 사용 기록이 축적되지 않아서 문제다.

의료 데이터와 ICT 기술 무장한 한국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이런 기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새로 개발한 기기가 제공하는 안전성과 혁신성에 대한 보상을 건강 보험 재정으로 지원하지 않고 있어서다. 미국과 일본, 독일처럼 우수 디지털 헬스 기기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지원을 통해 처방과 보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디지털 헬스 기기가 허가를 받으려면 임상까지 성공해야 한다. 이처럼 국가별 요구 사항이 달라 맞춤 지원 전략도 필요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런 산업 경쟁력 못지않게 고령화의 진전과 AI의 발달에 따른 의료 비용 절감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의료 비용 등 의료 자원 활용 감소 효과를 보였다는 논문은 미국에서 이미 2020년에 발표됐다. 환자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해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의료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오진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건강을 지속 모니터링하는 것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중요하다. 혈당이나 혈압 체크 같은 것은 가정 보안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수가 체계와 병원으로의 높은 접근성은 역설적으로 의료진이나 환자가 디지털 헬스 기기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다. 국내 의료 정책은 행위별 수가 체계로 의사가 병원에서 환자를 많이 진료해야 수익이 제대로 발생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과 환자·보험공단이 정부 및 기업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속히 만들어 불필요하게 병원에 가는 경우를 줄이고 대면 의료 질 개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실정에 맞는 포용적 원격 의료의 도입이다. 세계 각국에서 원격 의료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을 살펴보자. 과잉 의료를 근절하고 의료의 포용성 증대가 주된 이유다. 현행 국내의료법상 원격 의료는 도서·산간 등 대면 진료가 어려운 곳에 한정해 시범 사업 형태로만 진행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이미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예외적으로 허용한 원격 의료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재진에 한해서라도 동네 병원이나 약국에 피해가 최소한으로 갈 수 있도록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 원격 진료는 시·공간적 제약을 해소하고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의료 취약 지역 주민과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 증가하는 만성질환자 관리 등 원격 의료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호주는 응급실도 원격진료 활용

어느 나라건 외딴 시골 마을 주민은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불안에 떤다.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북쪽으로 약 860㎞,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남동쪽으로 850㎞ 떨어진 외딴 마을 윌리엄 크릭도 마찬가지다. 인구 20명 미만인 이 마을에 지난 3월 17일 24시간 원격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인 의료 센터 개소식이 있었다. 호주에는 ‘비행 의사(Flying Doctor) 서비스’가 있다. 이는 의사가 적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역에 비행기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외딴 마을을 비행해 환자를 돌보고 평상시에는 24시간 원격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호주 최초의 시도는 고무적인 일이다.

ICT를 활용한 병원 간 협력으로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 소형 병원도 중증 환자를 돌볼 수 있다. 호주는 응급실에서도 원격진료를 제대로 활용하는 모범 국가다. 캐나다에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이다. 지역 내 병원들이 ‘원팀’을 이뤄 응급 환자를 수용할 최적의 의료기관을 최단 시간에 찾아낸다. 모든 병원이 환자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유수 항공사가 의사와 협업을 통해 기내 환자에게 원격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도 의료 서비스 소외 지역과 의료 공급 부족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원격 의료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우리만 이런 과정에 뒤처져야 할까.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적 가치 주목해야

디지털 헬스의 대중 수용 단계에 진입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유독 우리의 의료 공간은 규제와 법적 제약이 산재하고 있어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부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자. 새로운 기술 도입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인가. 관행에 젖은 의사들인가. 디지털 헬스를 새로운 재정 책임으로 보는 정부 관리자나 보험회사인가. 정부는 원격 진료에 적극적이다. 보험사는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시장 한계 극복을 위해 핀테크의 한 영역으로 데이터 분석과 AI,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을 활용한 보험 서비스 ‘인슈어테크(Insurtech)’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환자가 늘 그래왔던 대면 방식으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 익숙해서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정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가올 미래를 거부할 수는 없다. 유용성이나 사용자 경험에 따른 효용이 부담을 넘어설 때, 디지털 헬스는 의료 혁신에 필요한 임계치를 넘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든다. 진료 서비스의 디지털 접점인 ‘디지털 프런트 도어(Digital Front Door)’ 확대를 위해서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같은 정보기술 기업이 건강관리 서비스 앱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필요한 의대 정원 조정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로 대한민국의 산업과 국민 건강을 동시에 챙겨야 할 것이다. 의료 접근성이나 편의성, 의료비 절감 효과 차원에서 디지털 헬스는 긴요하다. 디지털 헬스의 가능성과 산업적 가치, 그 의미를 국민이 이해하고 더 널리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