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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새 '에브리싱 랠리' 세 번, 그 끝은 버블 붕괴였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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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12면

과거 사례로 본 ‘에브리싱 랠리’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 최근 뜨거운 자산시장을 관망 중인 직장인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미국 S&P500이 지난해 10월 말 대비 이달 현재까지 30%가량 상승하는 등 해외 주요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10월 2300선이던 코스피도 이달 현재 2700선을 기록 중이다. 주식보다 변동성 큰 위험자산인 비트코인 가격은 연초 대비 2배가량 올랐다. 안전자산도 상승세다. 이달 미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국제 금값은 한 달간 8% 올랐다. 위험·안전자산 가격이 모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복합적인 호재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2년부터 ‘돈맥 경화’를 불러온 미국의 고강도 통화 긴축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안정으로 올해 완화(기준금리 인하)될 전망이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증시 부양 필요성이 커진 것도 시장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산업계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엔비디아 등 기술주(株)의 가치가 재부각됐다. 비트코인은 희소성을 더하는 반감기(전체 발행량이 제한돼 약 4년 주기로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현상)가 이달 중으로 예정돼 있다. 안전자산의 호재는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의 여전한 존재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최근 5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 주도로 계속될 전망인 데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자산시장에 미리 진입한 투자자들은 환호 중이지만, 관망했던 경우는 자신만 소외된 데 불안감을 느끼는 ‘포모(FOMO) 증후군’까지 앓고 있다. 이젠 기존 투자자마저 슬슬 불안하다. 이미 많이 올랐는데 여기서 더 오를지, 아니면 고꾸라질지 가늠이 안 돼서다. 홍지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과 비트코인, 금 등의 이례적인 동반 랠리로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졌다”며 “동참할지 이탈할지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에브리싱 랠리가 있던 세 번의 역사적 사례를 참고해 투자 전략을 재정립할 만하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는 100여 년 전 미국을 뒤흔든 ‘광란의 1920년대(Roaring 20s)’다.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발생 전까지 주식·부동산 등 주요 자산 가격은 9년여간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914~18년 1차 세계대전, 1918~19년 스페인독감 팬데믹에 따른 불황 직후 유동성이 몰려들고 미국 경제가 본격 성장 궤도에 진입한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의 완화적 통화 정책과 함께 자동차·가전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투자 수요가 급증했다.

두 번째는 1986~91년 일본의 버블(거품) 경제 시기다. 당시 일본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견제한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 상승을 유도, 수출 시장에서 일본의 가격 경쟁력을 무너뜨렸다. 일본 정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90년대 초까지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은행들은 대규모 대출을 실시하면서 돈줄을 풀었고, 풀린 돈은 고스란히 주식·부동산 등을 쓸어 담는 데 몰렸다. 당시 투자자들은 자산시장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에 빠져 거침없는 투자를 이어갔다. 88년 기준 시가총액 세계 50대 기업 중 33곳이 일본 기업이었다.

세 번째는 2020~21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다. 2020년 3월 팬데믹 시작으로 공포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돈을 빼내면서 폭락장이 형성됐지만 이는 기록적 상승장의 전조였다.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급히 돈줄을 풀고, 과도한 낙폭에 대한 반발 매수가 이어지자 주요 자산 가격은 급등세로 돌아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5년까지 7년에 걸쳐 풀린 유동성의 70%가 채 1년도 안 돼 풀렸다.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위험·안전자산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고 현금을 갖고 있으면 무조건 손해를 보는 때였다.

세 번의 전례를 보면 ‘폭발력 있고, 길게 지속되는’ 에브리싱 랠리가 언제 시작됐다가 끝나는지 확인된다. 시중의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야만 시작되고, 파급력 큰 신기술이 더해졌을 때 랠리도 거세진다.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랠리가 끝나고 버블을 붕괴시키는 폭락장이 찾아든다. 예컨대 자동차 등이 광란의 1920년대를 심화시켰듯, 1995~2000년 ‘닷컴버블’ 땐 인터넷이 그 역할을 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닷컴버블 땐 미국의 완화적 통화 정책도 작용했다”며 “2000년 긴축 전환과 함께 버블도 붕괴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의 에브리싱 랠리가 전례처럼 폭발력과 지속성을 갖춘 랠리보다는, 복합 호재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형성된 일종의 ‘미니 에브리싱 랠리’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금리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는 있지만 서두르지 않을 뜻을 재차 확인한 데다, 연내 인하를 시작해도 적어도 내년까지는 소폭 인하에 그칠 공산이 커서다. 강하게 오래가는 랠리의 필수 전제 조건인 시중 유동성의 폭발적인 증가는 아직 먼 얘기라는 것이다.

지금의 환호 이면에선 조정 임박을 경계하는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다. 박상현 연구원은 “풀리더라도 제한적인 수준일 유동성이 모든 자산에 계속 무차별하게 유입될 거라 보지 않는다”며 “글로벌 경기도 (호황이 아닌) 침체를 피해 연착륙을 시도 중인 상황”으로 분석했다. 변수는 있다. AI 기술이 세간의 기대처럼 과거 자동차 같은,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빠르게 자리매김하는 경우다. 하지만 바둑 AI ‘알파고’의 아버지로 통하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AI에 과도한 투자가 몰리면서 과장된 열풍(hype)이 불고 있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미 대선 등 역사적으로 입증된 호재 자체는 소멸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시장 과열을 진정시키는 조정이 있더라도 강하거나 길진 않을 거라는 ‘대세 상승장 전망’은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우존스마켓데이터에 따르면 1950년 이후 S&P500은 대선이 있는 해에 평균 83%가 올랐다(없는 해엔 7.3% 상승). 비트코인도 2009년 첫 발행 후 역대 세 번의 반감기 이후 1년여간 예외 없이 가격이 올랐다. 익명을 원한 애널리스트는 “이미 수익을 본 기존 투자자는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대응하고, 신규 투자자는 지금 당장 무리하게 진입하기보다 일부 (돈을) 넣고 상반기 중 조정이 끝난 후에 본격 진입하는 게 유리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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