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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우영의 과학 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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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우영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이우영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1616년 11월 어느 날,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군대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도나우 강 둑 위의 야영 막사에서 잠을 자다 한 편의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오늘날 흔히 쓰는 좌표의 개념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내 도형이 하나의 식으로 바뀐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 꿈속에서 꾼 꿈이 아닐는지…. 원은 평면에서 한 점에 이르는 거리가 일정한 점들의 모임이다. 동그라미가 원의 표상이다. 그런데 원을 그릴 수가 없다. 왜? 아무리 정성스레 원을 그려봐도 자세히 보면 거리가 모두 일정할 리가 없다. 옛날 사람들도 원의 존재에 대해 꽤 고민이 깊었던 모양이다. 머릿속으로는 그려지는데 그 존재를 확인할 길이 막연했으니. 어쩔 수 없었을까. 고대 수학자 유클리드는 그냥 원이 존재한다고 약속하자 했다. 이런 것을 공리라 부른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꿈 이후 갑자기 식을 적어 놓고 원이라 한다. 식을 아무리 뜯어봐도 동그라미는 없다. 이것이 추상의 묘미다. 원을 식으로 표현하니 그동안 몰랐던 원의 다양한 성질들이 드러났다. 그의 꿈 덕분에 이제는 심지어 4차원 시공간과 시간의 주름 속을 마음껏 헤엄쳐 다니기까지 한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꿈은 중의적이다. 꿈을 가지라 하더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과학의 속마음도 이중적이다. 그러나 과학이 꾸는 꿈은 꿈속의 꿈인지, 현실 속 꿈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요한 베르누이의 ‘2학년의 꿈’이라는 별명이 붙은 식이 있다. 어려운 적분을 계산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합으로 바꾸어 놓은 식이다.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은근히 요행을 바란다. 정말 맞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식이 너무 아름다워 꿈속의 꿈이려니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꿈은 참이다. 2학년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우리도 데카르트의 꿈! 미해결 난제를 풀다 보면 종종 꿈속에서 허우적대며 문제를 풀 때가 있다. 물론 다 허사다. 데카르트의 꿈은 그저 꿈에 불과. 그래도 늘 꿈을 꾼다. 그게 과학자의 숙명이려니.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