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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우리는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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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과학자였고, 문화대혁명 시기 끔찍한 일들을 겪었으며, 기밀로 관리되던 연구소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연구를 이어간 여성이 있다. 예원제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성은 태양 간섭 문제를 연구하던 중 외계에 인류 외의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이 메시지에 답할 경우 당신들은 발각되어 침략당할 것이니 절대로 답하지 말라는 경고가 쓰여 있다. 그리고 예원제는 답장을 보낸다. 와라,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행복한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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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사진) 이야기다. 시리즈는 류츠신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중 예원제는 문화대혁명 속에서 겪은 개인적 비극과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 등의 영향으로 인류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잃게 된다. 예원제가 마주하는 것은 극으로 치달은 이념 전쟁 속에서 죽었거나 미쳐버린 사람들, 호의를 가장한 배신, 인간의 필요를 위해 철저히 파괴되는 자연이다. 그런 식으로 인간에게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외부의 강력한 힘에 의한 전복을 꿈꾸고 있다. 일부는 인류의 절멸을 바라고 일부는 외계 문명을 신으로 모시며 그들이 올 날을 기다린다.

이 소설의 쾌감의 일부는, 우리가 결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하염없이 싫증 나고 매번 지겨워도 우리의 문제는 우리끼리 지지고 볶으면서 해결해야 할 팔자다. 인류 문명을 침략할 외계인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을 바닥부터 흔드는 기후위기는 이미 도착해 있다. 천정부지로 솟는 물가와 매우 낮은 출생률도 이미 도착해 있다. 이미 와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와달라고 요청을 보낼 외계 행성은 없다. 우리에게 자구력이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구력을 발휘할 기회는 늘 있다. 총선이 코앞이다.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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