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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임금체계 개편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 이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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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청년에게 희망 주는 노동시장 만들려면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의 고용시장 성과는 총량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보다 양호하다. 지난해 취업자는 2841만6000명으로 2022년보다 1.2%, 37만2000명 증가했다. 고용률은 62.6%로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고 실업률은 2.7%로 낮았다. 2022년 취업자는 기저효과의 덕도 있었지만, 전년 대비 81만6000명 늘어나 증가 폭으로는 역대 가장 컸다.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부터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까지 만들어진 일자리는 71만4000개로 박근혜 정부(2014~16년) 때 만들어진 일자리(111만개)보다 39만6000개 작았다. 문재인 정부였던 2019년의 고용 상황을 보면 취업자 수 증가는 10만명 밑으로 떨어진 2018년에서 30만1000명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60대 이상 일자리 증가가 전체 취업자 수 증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25.2%였고, 40대 일자리는 16만2000명 감소했다. 2019년 청년층 취업자 수는 4만10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고용률 최고, 실업률 하락해도
청년층, 제조업 취업자수 감소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 줄고
기업은 구인난, 고용 미스매치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 바꾸려면
고용 정책과 노동 개혁 연계해야

윤석열 정부서도 ‘세금 일자리’ 늘어나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고용의 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악화하고 있다. 2023년 취업자 수 증가는 36만6000명 늘어난 60대 이상이 견인했다. 40대와 청년층 취업자 수 감소세는 여전했다. ‘경제의 허리’격인 40대에서는 취업자 수가 5만4000명, 청년층 취업자 수는 9만8000명 줄었다. 청년층 고용률은 1년 전보다 0.1%포인트 하락해 46.5%로 주저앉았다. 전체 취업자에서 청년층의 비중은 2019년 14.5%에서 13.7%로 줄었다. 4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4.0%에서 22.0%로 감소했다. 반면에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7.3%에서 21.0%로 늘었다. 양질의 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취업자 수는 2023년에는 4만3000명 줄었다.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2019년 16.3%에서 2023년 15.7%로 감소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세금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 재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많은 공공행정·사회보장업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업의 비중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각각 3.4%에서 4.4%, 8.1%, 11.1%로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정부·지방자치단체 일자리 예산 5300억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이상 빨리 추진한다. 40대 일자리 감소에 대해 정부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감소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있을지 검토할 계획”이라는 형식적 답변이 있을 뿐이다.

청년 취업난 심각, 실업률도 상승

40대 일자리 감소도 문제지만 고용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속하는 청년 취업난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청년 실업자는 21만5000명, 실업률은 5.5%였다. 하지만 일이 있으면 추가 취업이 가능한 청년, 구직 활동을 했으나 조사 기간 중 취업이 가능하지 않았던 청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취업이 가능한 청년을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15.5%였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한국의 청년 취업난은 국제 기준에서도 심각하고 지난 10여년간 오히려 악화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 20위(실업률이 높을수록 순위가 낮다)였는데, 2009년 5위에서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OECD 국가의 청년실업률은 비교 기간 중 평균 4%포인트 하락했지만 한국은 오히려 1%포인트 증가했다.

실업자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쉰 청년은 2023년 12월 말 기준 36만6000명이었다. ‘쉬었다’는 30대는 29만명이었다. 고용정보원이 OECD 13개국의 청년 니트(NEET)족 실태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청년 니트족은 158만5000명, 청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9%이었다. 유형별로는 취업 준비·구직형(77만8000명)과 비구직형(50만7000명), 육아·가사 등 돌봄가사형(15만6000명), 진학준비형(9만2000명), 질병장애형(5만3000명)으로 나뉜다. 비교 대상 13개국 중 니트족이 전체 청년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이탈리아(23.3%)와 멕시코(22.1%)뿐이다. 프랑스(15.0%)와 미국(13.4%), 영국(12.4%), 덴마크(11.7%), 핀란드(10.8%), 스웨덴(7.6%) 등의 순이다.

청년층 취업 기피로 늙어가는 제조업

딜로이트의 2023년 조사에서 MZ세대가 가장 걱정하는 사안으로 생활비를 꼽은 응답자 비율이 한국은 45%, 글로벌 평균은 32%로 나타났다.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MZ세대는 한국이 31%로, 글로벌 평균(42%)에 비해 낮았다. 청년재단이 19~39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가장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청년 이슈는 ‘청년 경제생활 및 환경 여건 악화’가 41.2%로 1위였다. 청년의 70%가 가장 관심이 있는 정책 분야로 일자리 정책을 꼽았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33%가 니트족이 된 주된 사유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장기간 쉬는 청년도 2018년 36%에서 2023년 44%로 늘었다. 중소기업의 평균 소득이 대기업 절반도 안 되고 노동시장 초기 진입 직장이 전 생애의 커리어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청년들은 취업 삼수·사수를 하더라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반면 대기업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HR 테크 기업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2023년에 대기업 73.3%가 중 정규직 대졸 신입을 1명 이상 채용했는데, 지난 5년간 조사에서 지난해 채용률이 가장 낮았다. 대기업 채용률은 2019년 94.5%, 2020년 89.5%, 2021년 91.9%, 2022년 87.2%로 지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청년의 취업난은 악화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의 기업은 극심한 구인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올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단순기능 외국인 근로자의 수를 16만5000명으로 늘렸다. 지난해 도입 배정된 12만명과 비교해 4만5000명(37.5%) 늘어났다. 올해부터는 광업과 음식점업 등 3개 업종의 고용주도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청년 인구의 감소 그리고 청년의 제조업 취업 기피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근간인 제조업은 늙어가고 있다. 공장 직원의 절반이 60대 이상이다. 2023년 20대 제조업 취업자(59만9000명)는 60대 이상(54만5000명)보다 사상 처음으로 적어졌다. 2020년만 해도 20대 제조업 취업자(52만8000명)가 60대 이상(43만2000명)보다 9만6000명 많았다.

산업 현장의 청년 구인난은 향후에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청년 인구가 급속히 감소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기준 연령별 인구는 10대 464만4000명, 20대 614만8000명, 30대 654만9000명, 40대 790만7000명이다.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004년을 시작으로 ‘중장기 고용 정책 기본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게 돼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3년 1월 고용정책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계획이라고 천명하고 있으나 청년이 희망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절망하는 현 노동 시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계획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존의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제도를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변곡점에 서 있으나 갈 길을 잃어버린 노동 시장을 개혁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절박함이 없다.

국민 전체 위하는 노동운동 돼야

정책 추진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청년과 여성, 고령자 등 대상별 정책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실효적인 실천계획을 수립·이행한다’고 돼 있으나 저출산고령위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두번이나 바뀌었다. 2010년 10월 노동부는 간판을 고용노동부로 바꿔 달았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일자리 정책의 중요성 때문이다. 고용은 노동 시장의 결과치다. 일자리 정부를 지향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이 고용 참사로 귀결된 것이 입증하듯, 고용 상황과 고용·노동 관련 법 제도는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고용 정책과 노동 개혁이 연계돼 추진돼야 한다. 근로 시간 제도 개편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열린 노동시장의 초석이 될 임금 체계 개편 등을 포함한 노동 개혁이 이뤄져야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노동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대기업과 공공 부분 근로자 중심의 노동 운동이 국민 전체를 위하는 노동 운동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과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는 고용 정책 기본 계획의 ‘추진 과정 및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해 매년 초 연도별 롤링 플랜(Rolling plan)’을 발표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조만간 발표될 2024년도 롤링 플랜에서는 노동 개혁과 어우러진 고용 정책의 추진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