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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적을수록 아름답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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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세계박람회에 참가한 나라들이 심혈을 기울여 건축한 국가관은 겨우 몇 달 전시 후 철거돼 사라진다. 1929년 바르셀로나 엑스포에 건설된 20여 국가관도 행사 직후 모두 철거되었다. 그러나 독일관만은 그 건축적 중요성 때문에 1986년 재건되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독일관 전시 총책을 맡았다. 그는 근대 조형예술의 메카, 바우하우스의 핵심으로 세계 3대 거장 건축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1차 대전 패전 후 공화정으로 혁신한 독일은 진보, 번영, 평화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전을 엑스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려 했다. 미스는 독일관을 혁신적으로 설계해 건축과 공간 자체를 최고의 전시품으로 삼았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8개의 가는 십자형 기둥을 세우고 넓은 지붕을 띄웠다. 그 아래 공간에 독립적인 7개의 벽체를 적절한 위치에 세웠다. 벽체들은 서로 분리되고 일절 문을 달지 않아 열려 있는 공간을 이룬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내부 공간들의 경계도 모호하다. 하나의 공간이 완결되는가 하면 한쪽이 열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런 식으로 5~6개의 열린 공간들을 지나면 다시 외부로 나오게 된다. 최소의 벽체만으로 여러 형태의 공간을 만들고 연속적인 이동으로 다양한 체험을 유도한다.

외부의 넓고 얕은 연못은 자연광을 내부에 반사하고, 안쪽 깊숙한 또 하나의 연못에 ‘아침’이라는 인체상을 설치해 시적 장면을 연출한다. 바닥 재료는 베이지색 트레버틴, 벽체는 녹색 마블과 붉은 문양의 오닉스로 재료 자체가 장식으로 기능한다.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 없이 미니멀하지만 삭막하기는커녕 아름답다. 미스가 즐겨 인용한 “적을수록 더 좋다”는 미니멀리즘 건축의 진수다. 강철이라는 공산품도 자유롭고 풍요롭다는 미학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 작은 전시관은 이후 건설된 수많은 철골조 건축의 시조가 되었다. 아직 조상을 뛰어넘은 자손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