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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영경의 마켓 나우

동남아 ‘파묘’ 흥행 이면에 감춰진 것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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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영화 ‘파묘’가 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 흥행하고 있다. 공포물이나 오컬트·좀비물은 동남아에서 단골 인기 콘텐트다. 유독 ‘부산행’이 이곳에서 역대급 기록을 세운 것만 봐도 어떤 장르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동남아에서 K콘텐트가 막강하지만 드라마에 비하면 K영화의 위상은 훨씬 약하다.

‘오징어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더 글로리’에 이르기까지 K드라마는 동남아 OTT 인기 차트를 휩쓸었다. 이 지역 OTT 시장에서 K콘텐트 시청률은 39~50%를 기록하며 미국 영화와 시리즈를 압도했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 아이치이(iQIYI), 뷰(Viu) 등 플랫폼 경쟁자가 많아도 최강자 넷플릭스의 위상은 탄탄하다.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MPA)의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동남아 시장의 45%를 차지한다. 넷플릭스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의 비결도 K드라마다. 국가별 드라마 톱10에서 K드라마가 한때 8개를 석권했다. 최근 뷰(Viu)의 가입자 수 급증도 K드라마가 원동력이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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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관이나 OTT의 순위에서 한국 영화는 매우 드물게 등장한다. 원작보다는 오히려 ‘수상한 그녀’ ‘써니’ ‘7번방의 선물’ ‘끝까지 간다’의 리메이크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 제작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동남아 팬들은 K콘텐트가 세계로 나간 그 출발점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후원군이다. 6억8000만 명이 사는 동남아 콘텐트 시장에 변화가 진행 중이다. K드라마 시청률은 다소 낮아지고, ‘피지컬: 100’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의 섹터로 자리 잡았다. 아직 K예능이 드라마가 잃은 빈자리를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 대신 중국과 현지 로컬 콘텐트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프리미엄 VOD 플랫폼에서 동남아 자체 콘텐트 시청률은 12%, 중국 드라마도 10%로 높아졌다. 부상의 비결로 현지 시청자 요구와 다양한 라인업 구축 필요성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치솟는 제작비가 있다. 플랫폼은 가입자 수를 늘리고 제작비는 줄여 수익성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국 정부도 현지 스튜디오가 포함된 협업·공동제작에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다.

동남아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한국에는 좋은 배우·작가·감독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앞선 촬영과 편집·그래픽 등 전문인력과 교육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나 홀로’ 식으로는 K콘텐트의 지속가능성은 없다. 동남아의 다양한 소재와 거대한 시장을 한국의 제작역량 및 전문가 육성 시스템과 결합하며 더 큰 ‘동남아-K콘텐트 생태계’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