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이전 막으려…네덜란드, 3조7000억 '베토벤 작전' 계획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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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벨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네덜란드 벨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네덜란드가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예산 25억 유로(약 3조7000억원)를 동원한 긴급 대책을 내놨다.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으로 고급 숙련 인력 확보가 어려워진 ASML이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자 서둘러 대응에 나선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ASML 본사 인근 에인트호번 지역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지원책을 담은 일명 ‘베토벤 작전’의 세부 계획을 공개했다.

네덜란드 매체 더텔레흐라프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에인트호번의 도로·버스·기차 등 교통 관련 인프라에 10억 유로(약 1조5000억)를 투자할 계획이다. 또 이미 계획된 4만5000채 외에 2만 채의 주택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이어 기술 인력 양성에 2030년까지 4억5000만 유로(6500억)를 지출하고, 이후에는 매년 8000만 유로를 투자한다. 전력망 부족 문제도 개선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해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승리하고, 의회에서 고숙련 이주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기로 가결하자 ASML은 본사를 프랑스 등 외국으로 옮길 수 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네덜란드에서 성장할 수 없다면 다른 곳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ASML은 네덜란드 내 직원 2만 3000명 가운데 40%가 외국인일 정도로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이달 초 ‘베토벤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네덜란드계 독일인 음악가 베토벤과 ASML이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붙인 이름이다.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에 장비를 공급하는 ASML은 유럽 최대 기술 기업으로 ‘수퍼 을’로 불린다. 네덜란드 입장에선 ASML 사업장 이전 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됐다. 이례적으로 조만간 물러날 예정인 마르크 뤼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긴급 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다만 네덜란드 내각은 이 같은 막대한 투자 조건으로 “ASML이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네덜란드에서도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본사를 이전하면 투자는 재검토된다는 뜻이다. 에인트호번 서쪽에 있는 ASML 본사에는 전체 직원 4만20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근무하고 있다.

정부는 또 기업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내각은 “이러한 조처를 통해 ASML이 계속 (네덜란드에) 투자하고 법상, 회계상으로 실제 본사를 네덜란드에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SML은 이날 정부 계획을 환영하면서도 향후 어디에서 성장할지 결정 중이라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ASML 측은 “유리한 비즈니스 조건이 뒷받침된다면 네덜란드에서 확장 계획의 상당 부분을 달성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오늘 발표된 계획이 의회 지지를 받는다면 네덜란드 정부와 협력해 확장에 관한 의사 결정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펠트호번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협력 협약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네번째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윤 대통령,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펠트호번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협력 협약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네번째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윤 대통령,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ASML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서쪽 벨트호번에 본사를 둔 반도체 장비 기업이다.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선폭을 가진 반도체 제조엔 극자외선(EUV) 장비가 필수적인데, 이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 기업이다.

대당 2000억원이 넘는데 출하 가능한 장비 수가 연 40~50대 수준이라 품귀현상을 빚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의 ‘수퍼 을(乙)’로 불린다. 미국이 대(對)중국 수출 제한 대상에 ASML 장비를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매출 276억 유로(약 40조1193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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