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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공’ 달러…피벗 예고되자 되레 위로 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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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강달러 악몽’ 되살아나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첫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강(强)달러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활황에 달러 자산으로 자금이 다시 쏠린 영향이다. 강달러로 인해 수입 물가도 오를 가능성이 높아, 물가 안정까지 ‘울퉁불퉁한(bumpy)’ 구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값은 전 거래일 대비 2.5원 오른 1346.2원에 거래(환율은 하락)를 마쳤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장 시작과 동시에 1350원대까지 떨어졌다. 달러와 비교한 원화 값이 1350원대까지 낮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1일 이후 약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해 초 달러 대비 원화 값이 1300원 초반까지 올라왔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3개월 만에 50원 가까이 떨어졌다.

달러 독주가 다시 시작한 것은 우선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하 강도가 여전히 불확실해서다. 지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는 올해 0.25%포인트씩 3차례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 지표들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기준금리 인하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2%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3.1%)를 소폭 상회했다.

불확실한 기준금리 인하 경로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 경제의 격차로 인해 구조적인 강달러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발표한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기준 3.2%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이 1%대 GDP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격차다.

한·미 경제 격차는 기준금리 인하 이후 더 벌어질 수 있다. 미국 경기가 여전히 확장 국면에 있는 만큼, 긴축 정책 완화가 미국 경제 독주 체제에 기름을 부을 수 있어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은 기준금리 인하뿐 아니라 각국의 기초 경제 체력을 반영해 결정된다”면서 “유럽·일본·중국 등 다른 경쟁국과 비교해도 최근 미국 경제가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강달러 국면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엔화와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의 동반 약세 분위기도 원화 가치의 상대적 약세를 만들고 있다. 지난 19일 일본은행(BOJ)은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종료를 선언했지만, 추가 금리 인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에 ‘수퍼 엔저’ 분위기가 여전히 이어졌다. 여기에 중국 경기 침체 우려로 위안화 약세까지 더해지면서, 이에 동조하는 원화 가치를 더 끌어내렸다.

끝날 줄 알았던 강달러가 다시 시작하면서 한국 경제 불확실성도 커지는 모양새다. 달러 자산으로 자본이 쏠려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특히 물가 상승률에 악재다. 이 때문에 지난해 고물가가 장기간 유지됐던 ‘끈적한(sticky)’ 국면이 가고, 물가 변동성이 커지는 ‘울퉁불퉁한(bumpy)’ 구간이 찾아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은 점차 둔화하겠지만, 완전한 목표 물가 상승률(2%) 달성까지는 물가 상승률의 변동 폭이 확대되는 등 불확실성이 당분간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2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전 세계가 물가 안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평탄한 선형의 형태로 내려오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등 울퉁불퉁한 길을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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