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영호가 소리내다

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 개혁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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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통령과 정부가 필수공공의료·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에 의사들은 정부가 과학에 근거한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2000년 겪었던 의료 위기의 대재앙이 예고된다. 이미 2020년,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를 굴복시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의사 단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전면 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정부는 이번에는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서로가 상대를 굴복시켜서 다시는 반대를 못 하게 하겠다며 충돌 직전이다.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 것인가? 마치 솔로몬의 재판을 연상시킨다. 강 대 강의 대립으로 국민의 피해는 명약관화하다. 보건복지부는 상급병원 의료이용에 큰 변동 없다며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나 실상 교수들이 지탱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위기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의사들과 국민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포함한 의료 개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질병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의료 개혁을 함께 성공시킬 기회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양쪽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국민과 의료 개혁, 그리고 대한민국 미래 의료를 책임질 인재 보호다. 서울대병원 방재승 교수는 “국민이 없으면 의사도 없다”며 처절한 심정으로 중재자로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미래 의료 책임질 인재 보호해야   

당시 정부 정책에 맞섰던 전공의와 학생들 입장에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공백 해소, 전공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은 채 ‘2000명 의대 정원’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이를 방관한 기성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한쪽의 승리는 의료 개혁의 실패로 귀결된다. 승리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의료 개혁의 기회를 놓친다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번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정부와 의사들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대화의 뜻을 밝혀야 한다. 우리의 적은 국민, 정부, 의료계가 아니라 질병이고 국민의 건강을 위한 연합군, 한 팀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과학의 영역, 정책의 영역, 정치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에 의해 과학적 근거가 만들어지면 긴급성과 국민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사회적 합의라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 정책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의 영역은 동료 전문가 집단의 검증(peer review)을 통해 인정되어야 비로소 논문이 되고 과학적 근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의학적 근거에도 4가지 수준이 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은 그 중의 가장 낮은 수준의 근거에 불과하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의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미래 예측의 불확실성과 2019년의 의료 서비스 이용 양상이 유지된다는 다소 거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제시한 결과를 과학적 검증으로 보완하고 이해 관계자들과의 협상과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의료계는 과학적 검증을 거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정부 역시 필수 의료, 의료 공급과 수요에 대한 정책의 영향과 조정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최신 자료로 전문성ㆍ독립성을 갖춘 연구기관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조속히 추계ㆍ검증을 의뢰해 합리적으로 재조정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역점을 둔 바이오헬스 기술 투자로 자가관리를 통해 건강을 증진하면 의료 수요가 줄 것이며, 의사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같은 의사 인력에도 의료 공급을 늘릴 수 있어 필요한 의사 인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첨단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통한 글로벌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국민을 위한 의료 개혁의 동반자인 그들을 수가 통제로 인한 무한 경쟁의 시장에 내몰 것인가? 필자를 포함한 의료계 선배들은 낮은 수가 하에서 전공의에게 필수의료에 대한 고통을 부담시킨 잘못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전공의를 피교육자로서의 신분과 보수를 보장해주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사회적 책무를 할 수 있도록 전공의 월급과 교육 담당 교수 지원방안을 국가가 과감하게 책임지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경쟁국들은 시행하고 있다. 2018년 필자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미래 의료 인력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부가 전공의들의 수련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국민 10명 중 7명은 동의했다.

의료 과이용에 의한 과다 수요로 인해 의료인력 부족 현상과 건강보험 재정 결핍을 유발한 국민의 책임도 있다. 국민도 의료 개혁의 주체로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불편함을 감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적극 동참하는 국민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도 함께 도입해야 실효성이 있다. 2018년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건강 민주화를 위해 의료의 과용과 남용을 줄이기 위한 소비자인 환자의 책임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국민 10명 중 9명(89.5%)이 찬성했다.

첫해 의대 증원은 협상과 합의라는 정치적 결단의 영역   

의사들은 ‘근거에 기반한 의학’을 누구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에 정치인과 관료들이 오히려 그들이 이해하는 과학적 방식으로 설득하는 방안이 묘약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장기적 인력 추계가 있더라도 질병과의 전쟁으로 국민이 죽어 가는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첫해에 2000명부터 시작하자는 결단은 정치의 영역으로 보인다. 그다음 해부터는 상황변화에 따라 재평가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더욱 과학적인 정책 결정이다.

첫해에 시작하는 의료 인력 정원 결정은 정치적 영역일지라도, 10년간 혹은 5년간 필요한 의대 정원 추정은 과학적 영역이고 합리적 재조정은 정책의 영역이므로 정부에 의한 국민, 의료계 등 이해 관계자와의 설득과 협의가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하는 과정이 정치에 의한 정책 결정의 예술이다.

의료계만 승리하면 장기적인 의료개혁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정부만 승리해도 국민과 정부와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리고 필수의료의 자부심을 잃고 좌절한 의사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설 수 없어서, 역시 의료 개혁은 실패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 역시 어려워진다. 의료 개혁의 대전환을 위한 동반자로서 국민, 의료계, 정부 모두가 윈-윈해야 한다. 황희 정승이 “너도 옳고 또 네 말도 옳다”고 한 것은 거짓 없는 진심으로 말하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정책의 실패, 국민은 의료의 과이용으로 인한 수요 급증, 의료계는 의료 개혁의 방관자로서의 책임을 공감하면서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자.

국민·정부·의료계 협의체에서 2000명 증원 등 재논의해야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할 때 솔로몬의 지혜는 누가 과연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지를 놓고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윈-윈은 두 여인 중 한쪽이 아이를 양보하거나 한쪽이 반으로 갈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여인이 합심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다. 심판관인 국민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동반자로서 윈-윈의 장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대통령이 아니라 ‘의료 개혁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행정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 국민을 포함한 의료계와 정부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경청하고 소통함으로써 건설적인 협의체를 구성해 내년 2000명의 증원 규모를 포함한 의료 개혁의 실행 로드맵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국민·정부·의료계가 윈-윈 하는 의료 개혁 탄생 기대 

지금의 고통과 초조함은 대한민국 의료의 파국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의료 개혁의 탄생을 기다리는 산통이다. 가장 어두울수록 새벽이 멀지 않다. 짙은 어둠에서 벗어나 환한 미소로 국민과 의료계와 정부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탄생의 순간을 기대한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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