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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총선판이 좌우 극단으로 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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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번 총선은 상식을 초월한다. 선거 이론의 상식은 선거 때가 되면 좌우 정당 모두 중도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래야 외연을 넓히고 한 표라도 더 모아 선거에 승리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총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대표의 기치 아래 일사불란하게 좌클릭했다. 선거 때가 됐는데도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면 나아갔지 중도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도 한 달 전과 달리 판세가 불리하게 기울어진 것이 분명해 보이자 어정쩡하게 우클릭과 보수 결집으로 기운다. 민주당은 선거판 왼쪽은 싹쓸이할 줄 알고 진보정당을 포함한 비례연합까지 만들었는데 느닷없이 조국혁신당이 그보다 더 왼쪽에 시쳇말로 빨대를 꽂았다. 중도가 비어있을 줄 알았던 제3지대 정당들은 관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자멸하는 중이다. 왜 선거 이론의 상식과 달리 좌우 극단으로만 나아가고 중도를 외면하는 걸까.

여야 좌-우 클릭에 3지대 맥 못 춰
강성 지지층 결집, 방탄 꾀하는 야
코너 몰리자 이념 의존 도지는 여
총선 후에도 극단 정치 계속될 듯

개인적인 인센티브만을 본다면 이재명 대표의 좌클릭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사법 리스크는 너무 많아서 비전문가로서는 몇 개인지 세지도 못하겠는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혐의가 9개라고 한다. 이화영 전 부지사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관련자들의 진술도 일치하고 있어서 그에게 유리한 재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이 중 하나라도 유죄로 확정된다면 중대한 것들이다. 좋게 봐줘서 각각 혐의의 유무죄 확률이 반반씩이라고 한다면, 그가 9개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결받을 확률은 가위바위보 아홉 판을 연달아 이길 확률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이런 확률에 의지하기보다는 서둘러 국회의원과 당대표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친명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을 결집해서 총선에서 이기고 나아가 대선까지 거머쥠으로써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확률 높은 게임이다. 그러려면 중도의 온건한 지지로는 안 되고 왼쪽에 있는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비어있는 중도와 텃밭인 보수를 아우르기에 유리한 상황인데, 자신들의 정책이 왜 중요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설명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하필 이 시점에 이종섭 대사를 임명하는 정무 감각도 문제지만,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에서 과거와는 완전히 위상이 달라진 호주 대사의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문재인 정부의 무모한 공시지가 현실화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했지만, 조세 정의와 복지국가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그것이 왜 중요한 정책 변화인지를 설명하기는커녕 최대 수혜자인 한강 벨트에서도 밀린다. 최대 현안이 되어버린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초고령 사회 대비와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달리 접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거친 접근 끝에 총선을 앞두고 의사들의 선처를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얼마든지 장기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일관되고 중도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일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니, 코너에 몰리자 이념적으로 치우친 발언과 전 정부 탓이 나오면서 우클릭해버린다. 이 대표의 좌클릭이 계획적이라면 윤 대통령의 우클릭은 우발적이다.

국민의힘 우세가 점쳐지던 한 달 전에는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였다면, 정권심판론이 득세한 지금은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 달 전 우세 분위기를 회복하려면 한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을 대선후보급으로 높여서 회고적 투표가 아닌 전망적 투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할 텐데, 용산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변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예측이다. 이 대표의 지휘 아래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침 미국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비슷한 일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는 훨씬 더 심각하다. 그는 91개의 중범죄로 기소되어 있고, 범죄의 종류도 사기, 성폭력, 매수, 비밀문서 유출, 내란 선동 등이지만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트럼프가 만약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대선을 완주할 수 있을까. 미국 헌법은 내란에 가담하거나 헌법을 위협한 적을 지원하면 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 난입 사태를 사실상 선동했던 것이 이 조항에 해당하는지는 논쟁 중이다. 작년 11월에 나온 첫 판결은 그가 내란에 가담했지만 대선에는 출마할 수 있다는 판단이어서 더 큰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때문에 차기 대선 이전에 형이 확정되면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재판을 지연하든, 사법부를 압박하든 대선 이전에 판결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 혹은 탄핵을 통해 차기 대선일을 앞당기는 것이 될 것이다. 총선이 끝나도 당분간 극단의 정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