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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붉은 누룩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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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붉은 누룩 때문에 난리다. 일본의 대형제약사 고바야시 제약에서 만든 홍국(붉은 누룩) 건강보조식품을 먹고 두 명이 숨졌다. 지난 3월 22일 회사 측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가 판매한 붉은 누룩 건강보조 식품을 먹고 26명이 신장질환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이후 병원에 입원 한 사람이 늘어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 수가 100여 명에 달한다.

홍국은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처에서 인정한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중 하나이다.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쌀을 붉은 누룩으로 발효하는 과정에서 모나콜린K라는 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붉은 누룩으로 쌀을 발효 과정에서 신장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시트리닌이라는 독성 물질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홍국 관련 건강기능식품에서 시트리닌의 함량 기준치를 0.05㎎/㎏ 이하로 정하고 있다. 일본 여행 중에 관련 제품을 구입한 사람이라면 폐기 또는 반품해야 하겠지만 국내에서 제조, 판매 중인 홍국 관련 제품은 해당이 없다고 보는 이유이다. 하지만 일본 제약사측에 따르면 문제가 된 제품 3종에서 시트리닌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며 다른 미지의 물질이 의도치 않게 혼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본 고바야시제약이 판매한 홍국(붉은 누룩) 건강보조식품 ‘홍국 콜레스테 헬프’. [후지TV 화면 캡처]

일본 고바야시제약이 판매한 홍국(붉은 누룩) 건강보조식품 ‘홍국 콜레스테 헬프’. [후지TV 화면 캡처]

이번 사태를 통해 상기해야 할 점이 있다. 건강식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안전하진 않다는 것이다. 홍국에 들어있는 기능성 물질 모나콜린K는 사실 로바스타틴이라는 고지혈증 치료제 성분과 동일한 것이다. 약이라고 하면 부작용을 걱정하고, 천연 식품이라고 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스타틴과 같은 고지혈증 치료제보다 붉은 누룩 건강보조식품에 숨은 위험이 더 많다. 약과 달리 이런 식품은 제품 사이의 함량 편차가 크다. 특정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 바꿀 경우에 기능성 물질 함량이 낮거나 높아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이번에 일본에서 문제가 된 것처럼 발효를 통해 제조하는 과정에서 미생물, 독성물질 등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 모나콜린K 함유 식품을 섭취 시에도 드물지만 근육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스타틴 복용시와 부작용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약 대신 식품으로 먹는다고 해서 부작용이나 독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2021년 12월 어린이·임산부·수유부와 간 질환·고지혈증 치료제 복용 환자의 ‘홍국·홍국쌀 섭취 자제’를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9년 미국의 약사 3명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기능성 식품의 원료로서 홍국은 임상시험에서 효능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고지혈증 환자에게 스타틴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대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15년 전의 결론에 사람들이 조금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번 사태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