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 "셰셰" 이어 아르헨·브라질 폄하, 與는 베네수엘라 끌어들여…외교 파장 우려 최악의 총선

중앙일보

입력

호주, 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이번 총선을 앞두고 난데없이 국내 정쟁의 소재로 전락한 국가들이다.

정부·여당은 외교 결례 논란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신분의 호주 대사 지키기에 여념이 없고, 야당 대표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가 우리랑 뭔 상관이냐"고 외친 뒤 중국 관영언론에 대서 특필됐다. 여야가 상대방을 비난하는 예로 들면서 중남미의 주요국인 브라질·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는 한꺼번에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가 돼 버렸다.

진영 간 극한 대립으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외교안보 사안마저 이벤트성으로 쟁점화하고 있다. 상대국과의 외교 관계에 미칠 영향은 개의치 않는 여야의 선 넘는 정쟁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우선 이기고 보자'는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DB.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중앙DB.

이재명 "셰셰" 여파 계속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충남 선거 유세 현장에서 “중국에 왜 집적대나”며 “양안 문제, 우리가 왜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이라고 했다. 두 손을 맞잡은 뒤 "그냥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라고도 했다.

'침략'까지 거론하며 갈등 중인 중국과 대만 양쪽에 모두 "셰셰" 하자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는 데다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사실 문재인 정부 때(2021년 5월) 처음 수립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이를 계승한 것인데, 이를 윤 정부 공격용으로 쓴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2일 충남 당진 당진시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2일 충남 당진 당진시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뉴스1.

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만 해협 안정은 안보·물류·통신 측면에서 우리 국익과 직결된다"며 "이번 셰셰 발언으로 자칫 한국이 중국의 통일 전략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한·미 동맹의 신뢰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국민에게도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대만 언론 또한 이른바 이재명의 '셰셰' 발언을 보도한 모습. 대만 측은 이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야후 포털 검색 캡처.

26일 대만 언론 또한 이른바 이재명의 '셰셰' 발언을 보도한 모습. 대만 측은 이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야후 포털 검색 캡처.

中, 기회 틈타 압박 본격화

중국 관영 언론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왜 (한국이) 중국에 집적거리냐"라는 이 대표의 발언을 '화를 자초한다'는 뉘앙스가 담긴 표현으로 번역하며 "윤석열 정부는 편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의 언사가 악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다"(25~26일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달았다.

공교롭게도 중국 관영 영문 매체로 분류되는 글로벌타임스(관영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 영문판)는 이 대표의 발언 직후인 지난 24일 사설에서 SK하이닉스를 콕 집어 "한국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며 미국 주도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지 말고 대중 투자를 확대하라고 사실상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한국 총선을 앞두고 우리 기업을 상대로 '알아서 잘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 대표의 '셰셰' 발언이 중국의 이 같은 태도에 사실상 빌미를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제작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셰셰' 발언 영상. 환구시보.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제작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셰셰' 발언 영상. 환구시보.

중남미까지 끌어들이기

'셰셰' 발언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 이 대표는 지난 26일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까지 현 정부 공격에 끌어들였다.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에 출연해 "자칫 (한국이) 아르헨티나가 될 수도 있겠다"며 "얼마나 잘 살던 나라인가. 그런 나라가 정치가 후퇴하면서 망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브라질도 7대 경제 강국이다가 사법 독재, 검찰 독재 때문에 갑자기 추락해버렸지 않았냐"며 "대한민국도 그 분수령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한 식료품 가게에 가격표가 붙어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2022년 4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한 식료품 가게에 가격표가 붙어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이 대표의 발언은 상대국 폄하로 보일 여지가 큰 데다 지나치게 인과관계를 단순화해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에선 2014년부터 룰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현 대통령을 사실상 표적으로 삼은 사법 당국의 대규모 부패 수사가 있었지만, 이 때문에 경제가 휘청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에 더해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원자재 가격과 유가가 폭락했고, 국내적으로는 방만한 재정과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안팎으로 곪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핵심 원인은 포퓰리즘 

이 대표가 "정치 후퇴로 망했다"고 주장한 아르헨티나도 '페로니즘'(Peronism·후안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하자는 정책)으로 불리는 좌파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기울었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22년 12월 '중남미 내 포퓰리즘 확산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남미에서는 포퓰리스트 세력이 지속해서 출현해 왔으며, 포퓰리스트의 집권은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불안정을 초래하고 정책 불확실성을 일으켜 왔다"고 분석했다.

2021년 10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대적 시위(1945년 10월 17일)를 기념하는 '충성의 날'(Loyalty Day)을 맞아 친정부 시위대가 행진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2021년 10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대적 시위(1945년 10월 17일)를 기념하는 '충성의 날'(Loyalty Day)을 맞아 친정부 시위대가 행진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느닷없는 '남미 소환 공세'는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의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을 겨냥해 “그쪽으로 가면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과도한 복지 정책을 펴다 현재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인구 유출을 겪고 있는데, 이를 '좌파 포퓰리즘 정권'과 동일시한 것 역시 사실과 맞지 않는다. 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야권 탄압 등 권위주의적 통치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고, 미국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뒷마당 격인 중남미는 미·중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무대다. 미·중 모두 큰 공을 들이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인데, 한국에서는 값싼 정쟁의 소재가 돼 버린 셈이다.

지난 26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베네수엘라로부터 빠져나온 한 일가족이 철도 인근 길거리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26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베네수엘라로부터 빠져나온 한 일가족이 철도 인근 길거리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 AP. 연합뉴스.

이종섭 여진 총선까지 계속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둘러싼 논란 장기화는 또 다른 외교 이슈로 볼 수 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 대사는 지난 10일 호주에 부임했지만, 11일 만인 지난 21일 귀국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귀국 명분을 위해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를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작 회의는 오는 28일, 이 대사 귀국 후 1주일 만에야 열린다. 이 대사는 총선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에 머무를 전망인데, 복귀 일자를 정해두지 않고 대사가 주재국을 비우는 것 자체가 외교 결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호주 현지에서는 일부 교민이 대사 교체 시위를 벌이고, 시드니 한인회는 "10만 명에 가까운 다수 교민은 이 대사의 부임에 철저한 중립"이라며 여론을 호도 말라고 긴급 호소문을 내는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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