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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접어달리는 '축지법'…관광·지역경제 살렸다, KTX 효과 [스무살 KTX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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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개통 20주년 맞은 KTX (상) 성과와 과제]

2004년 4월 1일 KTX 정식 운행에 앞서 3월 30일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식 모습. 연합뉴스

2004년 4월 1일 KTX 정식 운행에 앞서 3월 30일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식 모습. 연합뉴스

 ‘누적 승객 10억명 돌파. 지구 둘레 1만 5000여 바퀴 거리 운행.’

 오는 4월 1일로 개통 20주년을 맞는 고속열차 KTX의 성적표 중 일부분이다. 종전 열차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시속 300㎞대의 압도적인 속도로 등장한 KTX는 국내 중·장거리 교통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대전·대구·부산·광주 등 목적지에 따라서 기존에 가장 빠른 열차였던 새마을호보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가까이 소요시간이 단축되면서 그야말로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 놓았다.

 대표적인 기록이 지난해 8월 말의 누적 승객 10억명 돌파다. 우리 국민 한 사람당 20번 넘게 KTX를 탄 셈이다. 20년간 누적 운행거리도 6억 3000만㎞로 지구 둘레(4만㎞)를 1만 5000여 바퀴나 돈 것과 맞먹는다. 그 사이 국내선 항공과 고속버스 등은 경쟁에 밀려 고속철도에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그만큼 KTX가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진혁 대한교통학회장(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은 “KTX가 국토의 시공간 지도를 크게 바꾼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지금껏 우리 국민의 지역 간 이동권을 이렇게 크게 향상시킨 교통인프라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2004년 경부·호남고속철도 동시개통으로 이른바 ‘꿈의 고속철도’ 시대를 열기까지는 논란도 많았고, 고비도 적지 않았다. 국내에 고속철도 도입이 최종 확정된 건 1980년대 말이지만 경부선과 호남선 등을 연결하는 고속전철 도입계획은 일찌감치 1970년대부터 거론됐다. 일본 신칸센을 본뜬 최대 시속 2백10㎞대의 고속전철을 건설해 4시간 30분이 걸리는 서울~부산 구간을 2시간 12분 만에 주파한다는 개념이었다.

 1980년대 초반엔 서울~대전 구간에 먼저 고속전철을 건설하는 계획이 논의돼 고속철도 선진국인 프랑스와 일본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논의와 갑론을박이 이어지다 1989년 정부 차원의 최종적인 사업추진 결정이 내려졌다.

 처음 경험하고 시도하는 고속철도 건설과정은 역시나 순탄치 않았다. 부실시공과 안전우려 논란 때문에 사업계획은 두 차례나 전면 수정됐고, 노선과 역위치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린 이견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업 타당성을 놓고 정치적 공방도 치열했다.

2001년 4월 먼저 개통한 경부고속철도 천안~대전 시험선 구간의 궤도설치 공사 장면. 연합뉴스

2001년 4월 먼저 개통한 경부고속철도 천안~대전 시험선 구간의 궤도설치 공사 장면. 연합뉴스

 고속열차 도입 역시 난항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테제베(TGV), 독일 이체(ICE), 일본 신칸센의 3파전이 벌어졌다. 단순한 기종 선정이 아니라 차후 기술 이전과 국산화까지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6차례의 평가를 거쳐 TGV를 최종 선정했다.

 계약 금액은 당시 우리 돈으로 1조 6800억원 상당으로 프랑스 제작 12편성과 국내 제작 34편성 등 총 46편성을 도입하게 됐다. 차량은 열차당 1000명 이상 태울 수 있도록 20량 1편성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당시 야당에선 자기부상열차를 도입했어야 했다는 비판성명이 나오기도 했다.

 고속철도의 대명사가 된 이름 ‘KTX’가 열차 명칭으로 확정된 건 2003년 말이다. 처음엔 ‘케이스타(K-Star)’ ‘비호(VIHO)’ ‘코라(KORA)’ ‘미렉스(Mirex)’ 등 여러 이름이 후보에 올랐으나 이미 1998년 고속철도 시스템의 명칭으로 제정돼 인지도가 높았던 ‘KTX’가 최종 낙점됐다.

 2004년 4월 1일 개통으로 프랑스와 독일, 일본, 스페인에 이어 세계 5번째의 고속열차 운행국가가 됐지만, 초기엔 시련도 상당했다. 아직 시스템이 안정화되지 않아 고장이 잦았던 데다 역방향 좌석과 비싼 운임 등이 논란이 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아직 국민에게 익숙지 않았던 신교통수단이었던 탓에 수요도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이 때문에 역방향 좌석은 요금을 5%가량 할인해주는 고육지책까지 동원됐다.

2010년 운행을 시작한 한국형 고속열차 KTX-산천. 연합뉴스

2010년 운행을 시작한 한국형 고속열차 KTX-산천. 연합뉴스

 정부 차원에서도 KTX 개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할 정도였다. 개통 1년이 조금 넘은 2005년 1월 14일 이해찬 당시 총리는 광주·전남지역을 방문해 지역인사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호남고속철도 사업을 조기에 착수해달라는 건의를 받고는 “경부고속철도가 막대한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호남고속철도에 15조원가량을 투입해 서둘러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 총리는 또 “경부고속철도는 당초 개통되면 하루 평균 2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7만명에 불과해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하게 됐다”며 “경부고속철도는 잘못된 정책사례로 연구·분석도록 국무조정실에 지시했다”고까지 밝혔다.

 하지만 KTX는 압도적인 속도와 시간단축 효과를 앞세워 어려움을 이겨냈다. 코레일(사장 한문희)에 따르면 2006년 말 하루 평균 이용객 10만명을 돌파했고, 이듬해 4월 21일엔 누적 승객 1억명을 돌파했다. 2010년 11월 1일에는 동대구~경주~울산~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신선구간이 개통하면서 경부고속철도가 모두 고속선으로 연결되는 완전체가 됐다. 2015년 4월 2일엔 오송~광주송정을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 신선구간도 개통했다.

KTX는 지난해 8월 말 누적 승객 10억명을 돌파했다. 연합뉴스

KTX는 지난해 8월 말 누적 승객 10억명을 돌파했다. 연합뉴스

 그동안 KTX 수혜권도 경부선과 호남선을 넘어 강릉선·중앙선·중부내륙선·전라선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 2004년 개통 당시 2개 노선 20개 역이던 것이 현재는 8개 노선에 69개 역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 사이 사람과 물류 이동이 활성화되고, 중장거리 통근과 통학이 증가했으며, 지역경제생산량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고속철도 이용특성 및 철도서비스 수요조사(2021년)’결과를 보면 고속철도 이용자의 71%가 “장거리 관광 및 레저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KTX가 장거리 통근·통학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도 67%에 달했다. 고속철도가 도시경쟁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방도시 이미지 개선에도 큰 보탬이 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초기 KTX를 잇는 후속 열차들도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2010년 3월 국내 기술로 제작한 한국형 고속열차인 KTX-산천이 운행을 시작했고, 2021년 1월에는 동력분산식 준고속열차인 시속 250㎞대의 KTX-이음이 중앙선에 투입됐다. 또 KTX와 KTX-산천을 대체할 시속 320㎞대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EMU-320도 곧 승객 운송에 투입될 예정이다.

KTX와 KTX-산천을 대체할 최고 시속 320㎞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인 EMU-320. 현대로템이 제작해 출고했다. 연합뉴스

KTX와 KTX-산천을 대체할 최고 시속 320㎞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인 EMU-320. 현대로템이 제작해 출고했다. 연합뉴스

 이처럼 KTX는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수혜권을 보다 넓혀야 한다. 다만 시속 300㎞가 넘는 고속열차 대신 KTX-이음 같은 준고속열차를 적극적으로, 유연하게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출발지 및 목적지와 고속철도 역을 연결하는 접근성도 개선해야만 한다. 열차를 타는 시간보다 열차까지 오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더 안전한 철도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모빌리티로의 전환과 소비자 중심의 운영 효율화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진혁 회장도 “모빌리티시대에 맞춰 KTX와 이어지는 연계교통 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고 다양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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