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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창규의 시선

테슬라와 엔비디아, 거품과 열풍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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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요즘 미국 월가에선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동네북 신세다. 올 초 248달러에 달하던 주가가 요즘엔 172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들어 30%가량 하락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테슬라에 대해 ‘성장 없는 성장주’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투자의견을 종전 ‘비중유지’에서 ‘비중축소’로 조정했다. 목표주가도 200달러에서 125달러로 37.5%나 낮췄다. UBS도 목표주가를 225달러에서 165달러로 내렸다. 물론 테슬라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며 “지금은 수건을 던질 때가 아니다”라는 전문가도 있지만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테슬라에 대해 투자의견을 제시한 월가 애널리스트 50명 가운데 18명(36%)만 주식을 사라는 ‘매수’ 의견을 냈다. 미국 투자매체 배런스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테슬라가 앞으로 30% 더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테슬라 30% 하락…‘월가 동네북’
투자자는 엔비디아로 갈아타기
혁신적 제품도 언젠가는 범용화

지난해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의 희망이었다. 연초 108달러에 불과하던 주식은 1년 새 248달러로 뛰어 1.3배나 올랐다. 당시 판매 부진 우려가 있던 테슬라는 공격적인 할인 정책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의 불을 지폈다. 재고 물량을 밀어내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효과가 좋은 편이었다. 영업이익률은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완성차 업계와 비교하면 상위권에 속했다. 지난해 전기차 인도량은 전년보다 38% 늘어난 181만대를 기록했다. 실적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고 주가는 롤러코스터처럼 변동성이 심했는데도 적극적인 개인투자자 덕에 주가는 대체로 고공행진을 했다. 이를 두고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에 빠진 투자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추격매수가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세계 전기차 시장 전망이 심상치 않다. 2021년만 해도 100% 이상 성장하던 시장이 지난해에는 33% 성장하는 데 그치더니 올해는 19%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에선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이 진행되고 있고 독일과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이 잇달아 전기차 보조금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32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한 최종안에서는 이 비중이 56%로 낮아졌다. 전기차에 관심이 많은 구매자의 수요가 한계에 이르면서 대기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높은 전기차 가격, 불완전한 충전 인프라,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 등이 겹치면서 수요는 얼어붙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캐즘(Chasm)’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새로 개발된 제품이 일반 대중에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수요가 줄거나 정체하는 현상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테슬라를 바라보는 월가의 눈빛이 싸늘하다. 시가총액도 미국 기업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12위권에 맴돌고 있다. 서학개미의 ‘손절’도 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테슬라는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1위였다. 하지만 2월에는 2위로 밀리더니 이달에는 7위로 뚝 떨어졌다. 그 자리를 인공지능(AI)의 황제주 엔비디아가 차지했다. 이달 서학개미의 엔비디아 순매수 규모는 테슬라의 4배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고 전기차가 ‘캐즘’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 나왔을 땐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전기차 시장은 특정 회사의 독주가 아닌 수많은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는 이미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자리를 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의 비야디(BYD)에 내줬다. 여기에 한국·미국·독일·일본 등 기존 완성차업체는 전기차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요즘 세계 시장엔 ‘AI 열풍’이 불고 있다. AI기업의 황제격인 엔비디아의 주가는 1년 5개월 전만 해도 112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은 950달러에 달해 8.5배 수준으로 뛰었다. 짧은 기간 주가가 급등하니 월가에선 ‘AI 버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주가가 너무 고평가돼 있어 2000년대 ‘닷컴버블’과 유사하다는 주장과 기술기업의 실적·펀더멘털(기초체력)을 고려할 때 그때와는 다르다는 반론이 맞선다. 시간이 가면 센바람은 흔들바람으로 바뀌고 어느새 실바람이 돼 우리 곁에 있게 될 것이다. AI도 마찬가지다. 혁신 제품이 범용화되면 일반 제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