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노동자 콩고서 폭동" 보도에 국정원 "사건사고 증가 추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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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들이 지난해 4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에 있는 대형 공사현장에서 골조공사를 하는 모습.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북한 노동자들이 지난해 4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에 있는 대형 공사현장에서 골조공사를 하는 모습.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국가정보원이 26일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집단 반발이 확산하는 분위기라는 내용의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의 보도에 대해 "각종 사건·사고가 증가 추세"라는 입장을 내놨다. '외화벌이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잇딴 집단 행동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틀어막으려는 북한 주민의 외부 문화 접촉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케이는 이날 중국에서 폭동을 일으킨 북한 노동자 200여명이 본국으로 송환됐으며, 아프리카 콩고공화국 건설 현장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콩고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지난달로 예정됐던 귀국이 연기되자 이에 반발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해외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에 기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여 관련 동향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 사실을 나열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첩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 해외 노동장 송환 시한을 하루 앞둔 2019년 12월 2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귀국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 해외 노동장 송환 시한을 하루 앞둔 2019년 12월 2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귀국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산케이는 지난 1월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내 허룽(和龍)시의 의류 제조 및 수산물 가공공장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처음 폭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은 당시에도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관련 동향을 주시 중에 있다"고 사실상 이를 확인하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 관련 첩보나 정보에 대해 국정원은 통상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로 일관하기 때문에 이번 입장이 주목된다. 국정원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해 관련 사안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인 콩고와 토고, 코트디부아르 등에선 북한 의료진이 현지 병원에서 외화를 벌고 있다. 안보리의 대북 제재 명단에 올라 있는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수주한 대형 동상 건설 현장 등에서도 북한 당국이 파견한 노동자들의 외화벌이 활동이 포착됐다고 한다.

지난해 4월 20일 저녁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북한 노동자 숙소에서 포착된 TV의 모습. 화면에선 조선중앙TV의 로고와 북한군의 시원으로 삼는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관련 이야기를 담은 '주체혁명의 첫 기슭에서'라는 소개편집물의 제목이 확인됐다.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지난해 4월 20일 저녁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북한 노동자 숙소에서 포착된 TV의 모습. 화면에선 조선중앙TV의 로고와 북한군의 시원으로 삼는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관련 이야기를 담은 '주체혁명의 첫 기슭에서'라는 소개편집물의 제목이 확인됐다.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국정원이 이번 입장에서 "증가 추세"라는 표현을 쓴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을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판단하는 것일 수 있어서다. 실제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폭동이 인접 지역이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에서까지 연달아 일어나는 건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다.

특히 북한 당국이 중국에서 폭동을 일으킨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해 일벌백계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사태가 일어난 건 김정은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국가비밀보호법(2023년)' 등을 제정하면서까지 막으려고 했던 외부 문물과의 접촉에 따른 효과일 수 있어 국정원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재 국면에서 외화벌이에 숨통을 트게 해주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북한 체제의 내구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돼 돌아온 것"이라며 "김정은 정권이 당장은 통제와 억압을 통해 주민들의 사상이완을 막으려 하겠지만, 이번 사태의 파급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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