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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결의안에 '동맹' 美·이스라엘 갈라지나…국제사회 휴전 압박 커져

중앙일보

입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개전 이후 최초의 결의안이자, 한국을 포함한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이 공동 제안해 통과된 첫번째 사례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한 여성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희생자를 찾다 오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한 여성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희생자를 찾다 오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의식해 3번 연속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5개 상임이사국 중 한곳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결의안은 부결된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엔 거부권 대신 기권을 택하면서 결의안은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결의안은 측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동시에 인질 석방, 가자 등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파견단 일방 취소…“균열 최저점 찍었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약속했던 고위 대표단의 워싱턴 파견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결의안 통과를 묵인했던 미국에 대한 항의 표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분쟁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심의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분쟁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심의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도 가만 있지 않았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매우 실망스럽다”며 이스라엘을 직격했다. 이어 “이스라엘 대표단의 일정이 변경됐다는 통보를 받았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며 이스라엘의 일방적 통보에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백악관에선 당혹감이 감지됐다.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백악관은 표결을 앞두고 이스라엘에 기권 의사를 미리 전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백악관 관계자들은 “네타냐후가 그렇게 강하게 반대했다면 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며 “이는 자멸로 가는 길”이라고 성토했다.

전통적 동맹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심각한 갈등에 대해 뉴스위크는 “바이든이 네타냐후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평가했고, CNN은 “파견단 취소로 두 사람의 균열의 최저점을 찍게 됐다”고 분석했다.

네타냐후 힘 싣던 바이든…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한지 11일만에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며 국제 여론이 비판적으로 흐를 때도 안보리 결의안에 잇달아 거부권을 행사하며 네타냐후에 힘을 실었다.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10월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10월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다 이스라엘이 구호품을 받으려던 민간인을 공격하는 등 가자 지구 내 사망자가 3만명을 넘어서며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네타냐후가 미국이 고수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병존하는 ‘2국가 해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100만명의 피난민이 모인 가자 남단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준비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아랍계 유권자들이 지난달 27일 미시간주 민주당 경선에서 조직적으로 ‘지지후보 없음’ 투표 운동을 벌이면서 비상에 걸렸다. 지난 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42%가 “이스라엘의 하마스 추적이 도를 넘었다”고 답했다. 바이든의 대응 방식에 대해선 60%가 “반대한다”고 했다.

이후 유대계이자 민주당 상원 1인자인 척 슈머 원내대표가 네타냐후 총리의 교체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고, 바이든은 즉각 그의 연설을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퇴로 없는 네타냐후…美 “정치 생명 위태”

네타냐후 역시 퇴로가 없다. 하마스의 기습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는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는 것 외에는 사실상 정권을 유지할 동력이 없다는 분석이다. 국제 사회과 전통적인 우방의 반대에도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강행하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일엔 자신의 최대 경쟁자인 국민통합당 베니 간츠 대표가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사실상 이스라엘의 대표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해리스 부통령 등을 만나면서 정치적 입지가 더 줄어든 상태다.

지난 2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위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해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위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해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11일엔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연례위협평가 보고서가 공개됐는데, 보고서엔 “팔레스타인에 강경한 정책을 추구하는 극우 정당들과의 연립정부뿐 아니라 지도자로서 생존능력도 위태롭다”는 내용이 담겼다. 네타냐후 퇴진 이후엔 온건한 정부가 출범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바이든은 네타냐후 때문에 낙선을 감수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네타냐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바이든이 퇴로가 없는 네타냐후만 지지하다 고립될 경우 그나마 대표적 성과물인 외교에서도 낙제점을 받게 될 거란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전’ 압박하는 국제 여론

실제 결의안이 채택되자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선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안보리 결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하고, 실패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지고 있다. 안보리는 미국의 기권 속에 처음으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AFP=연합뉴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지고 있다. 안보리는 미국의 기권 속에 처음으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AFP=연합뉴스

유럽과 중동 국가들도  결의안 이행을 촉구했다. 니콜라 드 리비에르 주유엔 프랑스 대사는 “라마단 이후 영구적 휴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하는 것이 유일하고 현실적이며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아흐메드 아불 게이트 아랍연맹(AL) 사무총장은 “지금의 교훈은 결정을 현장에서 실행하고 군사작전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즉각적으로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팡질팡…美 “구속력 없다”

이런 가운데 이날 표결에서 기권을 택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번 결의안이 ‘구속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또 다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결의안 채택 후 발언에서 “우리는 이 구속력이 없는 결의의 중요한 목표 중 일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언급했다. 반면 주유엔 슬로베니아·중국대사 등은 곧장 “안보리 결의는 구속력이 있다”고 맞섰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존 커비 NSC 보좌관도 “이것은 구속력 없는 결의”라며 자국 대사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커비 보좌관은 또 “(기권이)우리의 (이스라엘)정책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고, (양국의) 긴장 고조로 볼 이유도 없다”며 최악의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기 위한 발언을 덧붙였다.

2017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관련 바이든과의 재대결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로비가 가장 강력했고,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나쁜 말을 할 수 없었다”며 미국 내 유대인들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하마스는 공격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스라엘에 대해선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하고, 전쟁을 끝내고 평화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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