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 왕릉뷰' 터지나…종묘 앞 200m 건물, 유네스코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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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고 높이 203m로 개발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조감도. 윗부분이 종묘다. [사진 서울시]

최고 높이 203m로 개발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조감도. 윗부분이 종묘다. [사진 서울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서울시의 세운지구 재정비 계획안 관련 종묘(宗廟) 현황보고서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운지구 고층 재개발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의 경관 가치를 훼손하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에 이런 내용의 공문을 보냈고, 서울시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한국에 현황 보고서 요청 #세운지구 재개발안, 종묘 영향 검토

종묘에서 ‘김포 왕릉 뷰 아파트’ 논란 재현되나   

지난해 7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이 종묘의 세계 유산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고 유네스코에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당시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세운지구에 최고 200m 높이인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바라볼 때 건축물 윗부분 120m가량이 눈에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포 장릉 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서 논란이 된 ‘왕릉 뷰 아파트’ 사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지난해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세운지구에 200m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고층 건물이 훤히 보이게 된다고 밝혔다. [사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지난해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세운지구에 200m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고층 건물이 훤히 보이게 된다고 밝혔다. [사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학계에서도 유네스코의 이번 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세계 유산 경관을 훼손하는 개발을 막은 사례가 있다. 영국 런던시가 2006년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 인근에 초고층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2006년 유네스코가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 신축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2004년 세계유산 역사 도시로 등재됐던 영국 리버풀은 항구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2021년 지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런던, 런던타워 인근 신축 계획 철회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위원)는 “유네스코가 현황자료를 요청했다는 것은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의제를 다룰 때 종묘가 논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또 “도시 안에 세계 유산을 가진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만큼 서울시가 세운지구 재개발에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서울시는 종묘 경관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세운지구는 문화재 규제 지역(100m 이내) 밖에 있어 문화재 보존지역이 아니다 보니 개발을 위해 문화재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높이를 규제할 법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세운지구와 가까운 구역인 4구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도로변은 55m, 뒷면은 72m로 높이를 규제했다. 2구역도 종묘에서 바라보는 수목선 기준으로 높이가 제한된다. 이 밖에 나머지 3ㆍ5ㆍ6구역은 박원순 전 시장 때 90m로 제한했던 높이를 최고 203m로 완화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해당 구역은 종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높이 올라가더라도 경관에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녹지축 조성하면 남산까지 경관축 열린다”

서울시는 종묘부터 남산까지 이르는 경관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지축’ 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운상가부터 진양상가에 이르는 1㎞가량의 상가 군을 철거해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땅들은 모두 사유지로 매입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것이 한계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에도 녹지축을 만들기 위해 세운상가 앞 현대상가 한 동을 매입해 철거하는데 2000억원가량을 썼다. 당시 계산으로 현대상가를 포함해 총 8곳의 상가를 매입해 녹지축을 조성하는데 1조5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측됐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에 서울시는 7곳의 상가 중 PJ 호텔과 삼풍상가를 도시계획시설(녹지)로 지정해 매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측은 “소유주가 반대할 경우 강제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유주가 수백명에 달하는 다른 상가는 세운지구 내 사업지에서 기부채납 받은 공원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녹지축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상가 소유주들이 재개발 조합을 결성해 토지 맞교환에 동의하고, 새로 받은 땅에 건물을 신축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개발에 나섰지만, 소유주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실제 개발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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