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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다이아값 될라"…빨라진 벚꽃 시계, 농장주는 떨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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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일 강원도 평창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조용조(67)씨가 올해 사과나무에 맺힌 꽃눈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창=정은혜 기자

19일 강원도 평창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조용조(67)씨가 올해 사과나무에 맺힌 꽃눈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창=정은혜 기자

19일 강원도 평창의 한 과수원. 해발 700m의 산에서 13년째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조용조(67)씨는 착과 대비 가지치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씨는 온난화에 대비해 고랭지 농업을 하던 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4년 전부터 사과꽃이 피는 시기가 매해 5일씩 당겨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과나무에 올라온 꽃눈을 어루만지며 “지난해 병충해로 잎이 많이 떨어지고, 햇빛도 많이 못 받은 나무들은 보시다시피 꽃눈이 시원치 않다”며 “남부 지방에는 벚꽃 꽃망울이 터지고 있던데, 그걸 보니 올해도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빨라진 벚꽃 시계, 사과 농장주가 불안한 이유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생산량 급감으로 금값이 된 사과 가격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농가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도 봄꽃이 평년보다 이르게 개화하면서다. 사과 농가는 특히 벚꽃 개화 상황을 주시한다. 통상 농장 근처에서 벚꽃이 핀 뒤 10~15일이 지나면 사과꽃이 피기 때문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벚꽃 개화 시기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다. 기상청 계절관측에 따르면, 23일 경남 창원과 제주에서 벚꽃 개화가 관측됐다. 꽃샘추위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보다는 개화 시기가 다소 늦어졌지만, 평년과 비교하면 각각 6일과 2일 이르다. 빨라진 벚꽃 시계에 맞춰 전국의 벚꽃 축제 시기도 당겨지는 추세다.

문제는 벚꽃처럼 사과꽃이 빨리 피면, 그만큼 된서리를 맞아 열매 맺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경북 예천의 사과농장주 최효열(65)씨는 “지난해도 사과꽃이 빨리 펴 착과(열매가 열림)율이 전년보다 20% 떨어졌다. 이제는 이른 개화가 패턴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조용조(67)씨가 사과나무 가지치기하는 모습. 사과 나무 사이사이로 이상 기후에 대비하기 위한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다. 평창=정은혜 기자

강원도 평창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조용조(67)씨가 사과나무 가지치기하는 모습. 사과 나무 사이사이로 이상 기후에 대비하기 위한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다. 평창=정은혜 기자

올해 착과율이 좋지 않을 거라는 또 다른 징후도 있다. 착과율의 지표인 올해 꽃눈 분화율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센터 조사 결과, 국내 생산 사과 80%에 이르는 후지(부사) 품종 사과나무 꽃눈 분화율은 54%로 나타났는데 이는 평년보다 7% 낮은 수준이다. 사과연구센터는 “꽃눈 분화율이 60% 이하로 낮으면 수확량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며 가지치기를 할 때 열매 가지는 많이 남겨둘 것을 권고했다. 권순일 사과연구센터 연구원은 “지난해 가을 갈색무늬병이 유행하면서 사과나무 잎이 가을도 되기 전에 일찌감치 떨어졌다. 그런 탓에 나무가 영양분 생산을 많이 못 해 꽃눈 상태까지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상기후 지뢰밭 강화…다이아사과 되나

지난 10월에 발생한 우박으로 피해를 입은 사과. 최효열씨 제공

지난 10월에 발생한 우박으로 피해를 입은 사과. 최효열씨 제공

착과 이후에도 사과나무에 시련을 줄 이상기후 지뢰밭이 계절마다 대기 중이다. 지난해에는 여름 내내 폭염·폭우·병충해에 시달리다 가을엔 굵은 우박에 맞아 다 자란 열매가 상했다. 평균 기온이 높았던 데다가 강수량이 늘며 일조량까지 떨어진 탓인데 올해도 이런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겨울철 기온과 강수량, 강수일수 모두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겨울철 전국 평균기온은 섭씨 2.4도로 평년(0.5도)보다 1.9도나 높았으며, 강수량은 236.7㎜로 평년(89㎜)의 2.6배를 넘었다. 강수일수도 31.1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올봄에도 잦은 비로 인해 일조량이 부족한 상태다. ‘금(金)사과’로 불릴 정도로 급등한 현재의 사과 가격이 앞으로 뉴노멀이 되거나 더 올라 ‘다이아(몬드)사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설상가상으로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도 기후변화로 인해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현재의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사과 재배 적지 지역은 2020년 4만6980㎢에서 2050년 1만3206㎢로 줄어든다. 2090년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1213㎢)만 사과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 안보 관점에서 기후 위기 대비해야”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기후변화는 사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 생산량도 전년보다 26.8% 줄었다. 착과수 감소와 냉해 피해가 생산량 감소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배 역시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재배 가능 면적이 줄어든다. 포도와 복숭아는 2050년까지 재배 면적이 늘다가 결국 2090년에는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과일값이 급등하자 할인 지원과 함께 수입 과일 관세 인하를 통한 물량 확대를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추세적 변화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한 건 농업이고, 그 여파가 과일로 나타났지만 농업 전체가 위기인 상황”이라며 “장기적 호흡에서 지역에 맞는 농가를 육성하고, 기후변화에도 강한 품종 개발과 보급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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