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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용산 리스크’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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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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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의 정답은 꿈틀거리는 민심의 현장이다. 이종섭 호주 대사 거취 논란이나 황상무 수석의 ‘횟칼 테러’ 발언 여파로 총선은 다시 출렁거리고 있다. 황 수석 사퇴와 이 대사 귀국으로 임시 봉합한 국면이지만 싸늘한 여론과 수도권 지지도 폭락에 놀라 수용한 터라 효과조차 미미한 듯하다. 여당은 애써 잠재웠던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되살아나면서 총선이 다시 ‘윤석열 대 야당’의 정권 심판 구도로 바뀌는 악재에 초긴장이다.

민심 둔감 이종섭·황상무 사태로
오만 프레임 갇히고 만 대통령실
‘엘리트’ 내부논리 과잉편향 접고
현장 민심 존중하는 공감 노력을

수도권(서울 3, 경기 2)에서 영끌하며 뛰고 있는 국민의힘 후보 5인에게 ‘용산 리스크’가 낳은 현장을 들어보았다. “다녀보면 ‘매일 친명횡재다 뭐다 이재명 욕은 다 하면서 자기들은 왜 이리 마음대로 하나’란 얘기다. ‘어린 해병이 죽었는데 책임은커녕 대사로 내보내 놓고 도대체 국민 알기를 뭘로 아느냐’란다. ‘지금도 이리하는데 국회까지 쥐여주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겠느냐’고 한다. 용산이 오만의 프레임에 갇혔다. 3%, 1천 표 차 생사라 끼니 거르고 돌아다니는 데 한 주 새 수도권 지지 15%가 빠지니 맥만 빠질 뿐이다.”(경기 A후보)

“보수층의 용산 원망이 더 많더라. ‘4년 동안 야당에 발목 잡혀 생고생을 했는데 다시 지려고 작정했느냐’며 화를 낸다. ‘왜 하필 이때 굳이 이거냐’란 절박감의 분노다. 정치 관심이 많을수록 이종섭 대사에 부정적이더라. ‘피의자인 양반을 갑자기 대사로 내보내니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침묵하라 꼬리 자른 것 아니냐’고들 한다. ‘아 이게 뭔가 있구나’라는 의심이 퍼지는 건 순간이다. 공수처 문제점 얘기해 봤자 먹고살기 바쁜 이들이야 임명한 대통령실 잘못이라 생각할 수밖엔 없지 않냐. 살판난 민주당의 빅 마우스에 막기조차 버겁다.”(서울 B후보)

“가장 걱정은 이재명 사천 파동에 가라앉던 정권심판론이 되살아난 분위기다. 민주당이 다시 으쌰으쌰다. 정권심판론 도지니 여기저기 민주당과 진보당이 후보 단일화를 한다. 선거가 기세, 바람 아닌가. 용산이 매사 독선적으로만 각인되니 과거 조국 수사도 무리 아니냐는 의심으로 뒤바뀐다. 조국당 지지율 좀 보라. 비례 조국당 찍으러 집 나선 이들이 지역구의 여당 찍을 리도 없지 않냐”(서울 C후보)

“중도층은 윤석열-한동훈 갈등에 민감하더라. 남의 말 잘 안 듣는다는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이 바른말 좀 하고, 그걸 대통령이 들어주는 모양새면 ‘아 이 당은 그래도 기대는 해볼 만하네’라는 이들이 중도층이다. 중도층이 가름할 총선 보름 앞에 이 모양이니…. 며칠 전 대통령이 농협의 ‘875원 대파 한 단’ 들고 “이 가격이 합리적”이라 한 것도 말이 많더라. 왜 자꾸 시빗거리 만드는 건지. 그냥 좀 가만히 계셔줬으면 ….”(경기 D후보) “이거 의료 대란 기류도 묘해진다. 자꾸 불통 용산 이미지이다 보니 2000명 증원도 일방적 밀어붙이기 아니냐는 심리적 요동이 느껴진다. 어제 한 위원장이 의사들 만났다지만 환자들만 피해인 대란이 이어지면 다 나라님 탓일까 봐 걱정이다.”(서울 E후보)

총선의 승패 떠나 3년 넘게 국정을 더 이끌어 가야 할 용산이다. 수도권의 아우성 직전 이종섭 사태에의 대통령실 입장은 이랬다. “공수처·민주당, 일부 친야 언론이 결탁해 덫 놓은 정치 공작.” 황상무 파문 때는 “사람 그렇게 쓰는 것 아니고, 리더십 원칙이 더 중요” “언론 자유가 우리 정부 국정 철학일 뿐”이라며 6일을 끌었다. 내부의 지체된 판단은 결국 현장에 최악의 나비효과를 몰고 왔다. 바로 용산의 민심 공감(共感)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 처지에 서보고, 그들의 느낌·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통찰을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는” 상태다. 용산의 최대 오류는 바로 자기 내부 논리에 대한 선택적 과잉 공감이다. “공감이란 마일리지 같은 것”(과학철학자 장대익)이어서 자신에게만 쓰면 다른 이들에겐 쓸 수가 없다. 내 편에만 쓰면 다른 편에겐 해악이 될 위험이 공감의 양면성이다.

그러니 용산의 내부 소통이 늘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격노가 다반사라더라도, 먼저 현장을 느끼며 “노”하는 참모들이 버텨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엘리트 집단이라 자부할 용산의 국가적 책무다. 도대체 안보실의 누가 이 대사를 밀어붙였나. 누가 황 수석 사퇴를 그리 끌어갔는가. “성공에는 100명의 부모가 있지만 실패는 고아”이듯 일 터지면 그 뒤로 숨기 바빠 대통령만 홀로 전면에 서 있는 게 용산의 기억이다.

최고의 비서실장이던 레이건 대통령의 제임스 베이커는 “나쁜 결과를 막을 사전 노력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 비서실장은 늘 ‘노 맨(No Man)’이자 게이트 키퍼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소중한 통찰을 그는 레이건 장례식 추모사에 남겼다. “그 누가 자신의 라이벌 선거참모를 두 차례나 했던 이를 자기 비서실장에 임명하겠는가. 늘 너그러이 (‘노 맨’을) 받아주던 그를 위해 나는 8년 매일매일을 노력할 수 있었다.” 맞다. 먼저 대통령이 달라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