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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와 조국 열풍이 던지는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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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동경하는 사람과 투표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것 같다. 오타니 열풍과 조국혁신당 열풍이 동시에 부는 모습에 떠오른 생각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 소속 오타니 쇼헤이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으로 불린다. 실력도 인성도 완벽한 몸값 1조의 남자라는데, 그의 아내 다나카 마미코마저 4만원대 가방을 들어 화제를 모았다. 열광을 안 하기가 오히려 어렵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한국 사람들이 외모·학력·자산·직업·성격·특기 등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육각형 인간’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오타니 열풍을 보면 우리는 완벽한 인간을 갈망한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지난 21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거리에서 지지자에게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지난 21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거리에서 지지자에게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육각형 이론이 유독 정치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열풍을 넘어 태풍에 가까운 조국혁신당의 약진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당 대표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받았다. 그의 비례대표 순번은 2번이다. 청와대 하명수사 혐의로 지난해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황운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8번을 받았다. 현재로선 모두 당선권에 가깝다. 양당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총선 지역구 후보 699명 중 전과자만 242명이다. 막말과 성범죄 변호는 뺀 수치다. 양당 비례대표 명단에는 뒷배가 누군지부터 궁금해지는 이름이 상당했다. 육각형은 고사하고 삼각형 후보도 찾기 어려웠다.

유권자의 이념과 신념, 이상을 국회의원이 대리해 입법과 정책으로 현실화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전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더 이상 정치는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해결도 못 할뿐더러, 그런 기대조차 버린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삶과 정치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이번 총선을 ‘무쟁점 선거’라고 했다. 정책은 없고 혐오와 조롱만 남은 싸움판이라는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정치인이라는 존재를 차마 현실에선 내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 상대 진영을 향한 적대와 혐오 등 내 안의 가장 극단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충실한 확성기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닐까.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동경하는, 혹은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현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야당 대표는 대통령을, 여당 대표는 다시 야당 대표를 저격하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날 선 언어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장면도 수긍이 간다.

사실 육각형 정치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안에 가장 좋은 마음과 가장 선한 모습을 대변해주는, 나보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이들이 정치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오타니·조국 열풍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꽤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