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 부치는 재벌가 사위, 짠한데 또 웃기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은 3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눈물의 여왕’.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13%를 기록했다. [사진 tvN]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은 3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눈물의 여왕’.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13%를 기록했다. [사진 tvN]

제사 준비에 녹초가 된 사위들이 모여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홍씨 조상 제사인데 준비하는 사람은 김씨, 유씨, 조씨, 백씨다. 뼈 빠지게 전 부친 건 우린데 절하는 건 자기들끼리”라며 불만을 쏟아낸다.

지난 9일부터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한 장면이다. 하버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사위는 전의 굽기를 살피고, 건축가 집안 사위는 전을 완벽한 비율로 쌓아 올린다. 사회에선 내로라하는 재벌집 사위들의 제사 준비 모습은 현실 속 며느리들의 모습과 닮아 낯설지 않다.

‘눈물의 여왕’은 이러한 역발상을 기본 틀로 삼는다. 드라마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 위기를 맞이한 백현우(김수현)와 홍해인(김지원) 부부의 이야기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 백현우는 세간의 관심 속에 퀸즈그룹 재벌 3세 홍해인과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다. 기세등등한 재벌가 처가살이에 어느새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 그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는데, 이혼 서류를 들이밀기 직전 아내의 시한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남녀가 뒤바뀐 역발상으로 신선함을 꾀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익숙한 클리셰를 가져오되 이를 영리하게 뒤집는 방식으로 차별화시킨 것이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라고 짚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남자 버전으로 바꿔 행복하지 않은 어려운 처가살이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다뤘고, 시한부 코드 역시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기보다는 부부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계기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방영 4회 만에 드라마는 시청률 13%(전국, 닐슨)를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화제성도 높다. K콘텐트 경쟁력 조사 전문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발표한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에서 ‘눈물의 여왕’은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톱10 시리즈 순위(비영어권)에 7위로 진입해 일주일 만에 네 계단 올라 3위를 기록했다.

‘내조의 여왕’(2009),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별에서 온 그대’(2013),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등 화려한 전작을 지닌 박지은 작가는 이번 작품으로 4년 만에 복귀했다. ‘눈물의 여왕’은 그의 직전 작품인 ‘사랑의 불시착’(2019)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정 평론가는 “로맨틱 코미디는 박 작가의 주특기인데, 그 중 코미디가 박지은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이라면서 “바람 타고 북으로 넘어가거나(‘사랑의 불시착’) 외계인과 사랑에 빠지는(‘별에서 온 그대’) 등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캐릭터와 상황을 재밌게 그려낸다”고 분석했다.

‘눈물의 여왕’에서도 코미디적 요소가 도드라지는데, 두 주연 배우의 능청스러운 호연은 이를 잘 살려낸다. ‘별에서 온 그대’와 ‘프로듀사’(2015)에 이어 세 번째 박지은 작가와 호흡을 맞추는 김수현은 아내의 시한부 판정에 ‘슬픈 척’을 하거나 재벌가에 주눅 든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한다.

가볍게 보는 드라마로 대중에 접근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는 작품을 꾸준히 보게끔 만드는 힘이 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처가에서 제사상을 차리는 사위들의 모습은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강자와 약자 즉 사람 간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모든 것을 가진 재벌 캐릭터인 강자 홍해인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드라마는 메시지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쌍한 것을 보면 동정심이 생겨요. 나는 피가 차가운 여자였는데”라는 대사처럼 홍해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인다. 정 평론가는 “드라마 제목인 여왕 홍해인의 눈물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했던 드라마를 공적인 주제로 확장시킨다”고 말했다. “과연 부자는 행복하기만 할까? 진정한 행복은 타인과 나누면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시청자들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이같은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