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주 표심’ 경쟁하는 한미약품 형제vs모녀, 국민연금·소액주주가 관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중앙포토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중앙포토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 진행 중인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의 28일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자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사장의 ‘OCI와 통합 반대’ 의견에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통합을 추진하는 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 등 모녀 측과 지분율 차이가 여전히 크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미약품 주요 계열사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사우회가 주총에서 통합 추진 쪽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주총 전까지 막판 표심을 확보하려는 양측의 물밑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한미-OCI 통합 ‘빨간불’

앞서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터’로 주목 받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지분율 12.15%)이 지난 22일 형제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추진한 송 회장과 딸 임주현 사장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 회장은 22일 중앙일보와 만나 “대주주들이 상속세 부담 등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권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거래를 (OCI그룹과) 행했다”며 “임종윤·종훈 형제가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기업의 장기적 발전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임성기 선대 회장과의 친분을 계기로 한미약품에 20년 이상 투자해왔다. 그는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된 재단들이 일부 대주주들의 의사결정에 개인 회사처럼 활용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며 가현문화재단(4.9%)과 임성기재단(3%)의 지분이 통합 찬성 의결에 활용되는 점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측은 23일 “OCI와의 통합을 결정하면서 대주주 중 한 분인 신 회장에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히며 “상속세 재원 마련이 단초가 됐지만 결코 대주주 몇 명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 통합이 추진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한미’라는 비전에 도달하기 위한 이사회의 결정과 판단이 있었다”며 “주주들이 한미의 미래를 선택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24일 임주현 사장도 입장문을 내고 신 회장에게 “지금까지처럼 한미그룹의 미래를 위해 저희를 응원해 달라”고 호소하며 “어머니(송영숙 회장)와 저는 현실적인 상속세 문제를 타개하면서도 한미약품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OCI와의 통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빠와 동생(임종윤·종훈)은 지분을 경영권 프리미엄과 함께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OCI와 통합이 마무리되면 향후 3년간 한미사이언스의 주요 대주주 주식을 처분 없이 예탁할테니 오빠와 동생도 3년간 지분 보호예수를 약속해달라”고 말했다. 또한 임 사장은 형제 측에 상속세 잔여분 납부에 관한 구체적 계획과 자금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하며 “무담보로 오빠에게 빌려줬던 대여금 266억원도 즉시 상환하라”고 덧붙였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주총 D-4, 관전 포인트는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왼쪽)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중앙포토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왼쪽)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중앙포토

현재 송영숙 회장(11.66%)·임주현 사장(10.2%)의 특수 관계자와 재단 두 곳의 지분을 합한 모녀 측의 지분율은 35%다. 이에 맞서는 임종윤 사장(9.91%)·임종훈 사장(10.56%)의 특수 관계자와 신 회장(12.15%)의 지분을 합한 형제 측의 지분율은 40.57%다. 형제 측이 모녀 측보다 지분율이 약 5%포인트 앞선 가운데 국민연금(7.66%)과 소액 주주 등 기타주주(16.77%)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이날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한미정밀화학 임직원 약 3000명이 모인 한미 사우회는 이번 주총에서 보유 주식 23만여 주(약 0.3%)를 ‘통합 찬성’을 위해 표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총에서 회사 측은 임주현 실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등 6명을, 형제는 자신들을 포함한 5인을 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어느 쪽이 이사회(10명) 다수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OCI와의 통합이 결정된다.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왼쪽)과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중앙포토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왼쪽)과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중앙포토

이에 대해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도 엇갈린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사측 후보 6명 전원 찬성, 형제 측 5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반면 또다른 의결권 자문사 ISS는 사측 후보 중 3명에 찬성, 형제 측 후보 중 2명에 찬성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ESG기준원(KCGS)은 형제 측 5명 중 4명 찬성, 사측 6명 선임안엔 불행사를 권고했다.

가처분 신청, 법원의 판단에 주목

임종윤·종훈 사장 형제가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에 청구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도 이르면 25일 나올 전망이다. 양 측은 두 차례 심문을 통해 통합 결정 전 한미사이언스가 경영권 분쟁 상태에 있었는지, 신주발행이 경영상 필요한 것인지, 통합과정에서 임종윤 사장 등 주주권리 침해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열띤 공방을 벌였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통합을 둘러싼 법적 논란이 일단락된다. 하지만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한미약품그룹과 OCI 간 지분 이전에 차질이 생기며 통합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