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출 1480억, 심사조차 없었다…헝가리 총리 사위 특혜 논란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연합뉴스

'헝가리의 트럼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가족 특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오르반 총리의 첫째 사위가 호텔 재건축 등 관광 산업의 큰 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치 개입은 전혀 없다"는 해명과 달리 사위 회사가 최대 주주로 있는 투자사가 공항·통신 등 굵직한 국책 사업 자문을 맡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브로맨스(남자 간 우정)'를 과시하는 오르반 총리가 통치 행위로 가족 사업에 행사했던 트럼프와 닮은꼴이라는 평도 나온다.

데일리뉴스 헝가리 등 현지매체와 블룸버그통신 등을 종합하면 오르반 총리의 사위 이슈트반 티보르가 소유한 회사 BDPST가 수도 부다페스트 중심과 근교에 고급 호텔을 재건축하고 있다. BDPST는 앞서 방치된 성을 사들여 5성급 고급 호텔(보타니크 캐슬 오브 투라)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 이곳은 세계적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지난 2022년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대규모 파티를 열었던 호텔이다. 고급 스파와 레스토랑을 갖춰 부유한 관광객과 정계 인사들이 찾곤 한다.

이런 실적을 발판 삼아 BDPST는 부다페스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에 자리한 겔레르트 호텔을 2027년까지 재건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관광객이 많이 찾는 벌러톤 호수 부근, 와인 생산지로 잘 알려진 토카이에도 오르반 총리 사위의 호텔이 들어서고 있다.

티보르는 장인의 권력에 기대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에 "헝가리에 있는 잠재 관광 자원을 찾아 개발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며 "차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오스트리아 빈에 관광 수요를 빼앗기지 않고, 부다페스트에 고급 호텔 지구를 만들어 관광객이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최고 관광지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과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에 자리한 겔레르트 호텔 외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 BDPST는 이 호텔을 2027년까지 재건축하기로 했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과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에 자리한 겔레르트 호텔 외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 BDPST는 이 호텔을 2027년까지 재건축하기로 했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비선에서 활약하는 오르반 사위  

헝가리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탠다는 사위 주장과 달리 일각에선 개발 이점이 사위 회사에만 쏠릴 수밖에 없는 독점 구조와 각종 정경유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내 5성급 호텔 중 하나인 도로테아 호텔 재건축 당시 오르반 사위 회사 BDPST는 헝가리 시중은행 MBH에서 400억 포린트(1480억원)를 대출받았다. MBH는 헝가리 정부가 지분 일부를 가지고 있고, 오르반 총리의 연이 깊은 친구가 이 은행 최대 주주로 있다. 까다로운 대출 심사 없이도 호텔 재건축을 위해 투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 오르반 총리는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부다페스트 지구 건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UAE(아랍에미리트) 정부와 공동으로 60억 유로 (8조7500억원) 상당을 투자해 초고층 빌딩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두바이 스타일의 부다페스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세의 멋이 핵심인 부다페스트에 어울리지 않는 개발이라는 지적에도 오르반 정부는 밀어붙이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 회사인 BDPST가 재건축한 부다페스트 5성급 호텔 '보타니크 캐슬 오브 투라' 외관. BDPST는 방치된 성을 재개발해 호텔로 탈바꿈 시켰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 회사인 BDPST가 재건축한 부다페스트 5성급 호텔 '보타니크 캐슬 오브 투라' 외관. BDPST는 방치된 성을 재개발해 호텔로 탈바꿈 시켰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블룸버그는 이 프로젝트와 연계해 오르반의 사위 회사 BDPST가 부동산 개발 분야 전방위로 확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BDPST는 헝가리 최대 투자 자문 회사인 에퀼러(Equilor)의 최대 주주로, 각종 국책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르게이 카라초니 부다페스트 시장은 블룸버그에 "부다페스트 관광 활성화를 외치지만 실제 시 자치단체의 정부 지원금은 삭감됐다"며 '가족 특혜'에 대해 날을 세웠다.

오르반의 사위에 줄을 대고자 헝가리 기업가들도 앞다퉈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BDPST가 2027년까지 재건축 하기로 한 겔레르트 호텔은 본래 헝가리 대표 부동산 투자 기업 인도텍(Indotek)이 소유하고 있었다. 인도텍은 부다페스트 공항 매입 등 각종 국가사업에 관련된 기업이다. 블룸버그는 "호텔은 헝가리에서 비즈니스와 정치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는 창"이라며 인도텍이 자사가 보유하는 호텔을 오르반 총리 사위에 넘겨주는 대가로 각종 국내 사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BDPST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5년 설립 이후 8년 동안 650억 포린트(2400억원)의 자산을 증식했다. 포브스는 37세의 젊은 사업가이기도 한 티보르의 재산이 753억 포린트(2780억원)로, 헝가리 부자 순위 27위에 올라 있다고 전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 이슈트반 티보르. 그는 부동산개발, 호텔 경영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 BDPST를 이끌고 있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사위 이슈트반 티보르. 그는 부동산개발, 호텔 경영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 BDPST를 이끌고 있다. 사진 BDPST 홈페이지 캡처

호텔 사업 특혜 의혹 전에도 오르반의 사위 티보르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이 있었다. 2018년 유럽연합(EU) 부패감독청은 오르반 총리의 사위가 연루된 EU 기금 편법 횡령 의혹을 조사하기도 했다. 티보르가 운영했던 회사는 EU 기금의 지원 받는 가로등 사업을 수주했는데,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거액을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았다.

EU 부패감독청의 결정에 따라 EU 집행위원회에 4370만 유로(636억원)를 토해냈지만, 당시 헝가리 경찰이 사건을 무혐의 종결해 사법 절차를 밟으라는 EU 권고 사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헝가리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 인식 지수에서 100점 만점 중 42점으로 EU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