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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보통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했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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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호 35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이정민 칼럼니스트

온갖 해괴한 일이 난무하는 정치판이지만 22대 총선을 앞둔 지금의 여의도만큼 몰상식과 꼼수가 활개 치는 막장극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형사사건 범죄 혐의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신당을 만들고, 멀쩡한 자당 소속 의원들을 무더기로 징계, 출당해 위성정당에 보냈다. 불공정과 반칙·위선의 대명사가 된 자신의 이름을 당명이랍시고 버젓이 내걸기도 한다. 이름하여 조국혁신당이란다. 특정인의 이름을 당명에 사용하면 홍보에 유리하다며 ‘안철수 신당’을 불허했던 선관위는 ‘조국(祖國)’의 동음이의어란 이유로 조국혁신당 사용은 승인했다. 조국(曺國)을 조국(祖國)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형사 피의자 대거 공천한 조국당
이재명은 대장동 변호사 방탄공천
법 좀 안다는 법조인들,양심 저버려
정치의 사법화가 부른 불행한 결말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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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목도한 바와 같이, 조국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직권남용 등으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돼도 대법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날로 의원직이 박탈된다. 이런 처지라면 달았던 배지도 스스로 내려놓는 게 순리다.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상식을 뒤집고 자신을 비례 후보 2번에 셀프 공천했다. 이뿐 아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불출마를 선언한 황운하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 조국당에 합류해 비례 8번에 낙점됐다.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의 배급에 관여한 정상진 후보는 박스오피스 순위 조작 가담 혐의로 검찰 수사를, 차규근 후보는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으로 2심 재판 중이다.

유권자 중엔 검찰 개혁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고, 피선거권이 있으면 누구든 신당을 만들 수 있으니 창당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진짜 사법 정의를 위한 것이라면 그 목적과 철학에 부합하는 흠결 없는 인사들을 앞세워야 마땅하다. 사법 리스크 부담이 있는 조 대표 자신은 불출마의 용단을 내리는 게 취지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범죄 도피의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실형을 선고받고 재판 중인 형사 피의자를 당선 예상권에 대거 공천했을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가위 꼼수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하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에 대한 직무 정지를 규정한 당헌에 예외조항을 급조해 대표 자리를 꿰차더니, 똑같은 금품수수 의혹에 노웅래·기동민 의원은 컷오프, 이 대표는 면죄부다. ‘검찰 정치 탄압의 희생양’이라서란다. 이 괴상한 이중잣대의 정점은 총선 후보 등록마감을 반나절 남겨놓고 빚어진 서울 강북을 후보 교체 소동이다. 민주당은 정봉주(막말)·조수진(성범죄 변호) 후보의 잇따른 낙마로 세 번째로 한민수 후보를 전략 공천했는데, 경선 차점자이자 유력한 당권 경쟁자인 박용진 의원은 이번에도 배제됐다. 반면 이 대표와 부인 김혜경씨, 대장동 사건과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양부남·박균택·김기표·이건태·김동아·이영선)은 민주당 우세 지역에 줄줄이 공천됐다. 당내에서도 “개인 리스크 방어에 대한 보상과 부담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의심되는 대장동 변호사 공천은 희대의 기괴한 사천으로 기록될 것”(전혜숙 의원)이란 반발이 높지만, 그래봤자 마이동풍이다. ‘비명횡사 공천’ ‘대장동 방탄 공천’이란 비아냥은 민주당 역사는 물론 70여 년 한국 정당사에 없던 해괴한 일이다.

고장 난 한국 정치의 살풍경이다.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전직 법대 교수·변호사·검사·판사등 소위 법 좀 안다는 사람들이 버젓이 하고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이 있듯이, 형사 피의자를 공천하지 않는 건 법·규범 이전에 양심과 도덕의 문제다. “실정법 위반은 아니다”는 항변은 양심을 부정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치가 무너진 자리를 사법이 대신해온 ‘정치의 사법화’의 불행한 결말이다. 정치가 당면한 과제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 결정을 사법의 판단에 떠넘기면서 정치가 길을 잃은 지 오래다. 협상과 타협을 요체로 하는 정치는 때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4.5 대 5.5의 선택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은 10대 0, 정글의 세계다. 상대를 타협을 통해 공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무너뜨려야 하는 적대자로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탄생, 윤석열 정부로의 정권교체 과정에서 정치 윤리의 실종을 목격했다. 대화는 실종되고 툭하면 사법부 앞으로 달려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만연했다. 적폐를 청산한다며 법을 자기 입맛대로 끌어다대고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은 사라지고 가치는 전도(顚到)됐다. 흰색을 검정이라고 해도, 진영의 보스를 따른다. 그러니 조국당이 기세를 올리고 민주당이 ‘150석+알파’ 운운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이런 갈등의 확대 재생산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탓이 크다. 정치를 복원하기는커녕 검사 등 법조인을 요직에 두루 포진시키며 법 만능 사고로 국정을 이끌었다. 정치의 사법화가 더 공고화된 것이다. 이런 사고에 갇혀 있으니 디올백 논란과 이종섭 호주대사의 편법 출국 파문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4·10 총선을 향한 선거운동이 오늘(23일) 시작됐다. 화살이 시위를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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