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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한국과 미국 정치는 닮은 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2호 34면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지난달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3’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전 세계 167개국 중 22위였다. 8.09점을 받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군(8점 이상)’에 포함됐다. 아시아에선 대만(8.92점·10위)과 일본(8.40점·16위)의 뒤를 이었다. 세계 최강 미국(7.85점)은 29위를 차지했다. 8점을 넘지 못해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군(6~8점)’에 속했다. 분류된 집단은 달랐지만 한·미 양국의 순위 차는 불과 7단계였다. 한때 우리에게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였다.

이분법적 분열정치 국민 신뢰 잃어
정치개혁 요구 목소리에 응답해야

실제 양국 정치판의 현주소를 보면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나라는 현재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다음달 10일 총선을 치를 예정이고, 미국에선 오는 11월 5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정치 문화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더욱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첫째, 정치인들이 국민을 극단적인 양극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지금 상대를 악으로 보는 마니교적 이분법이 정치판을 휩쓸고 있으며 이 같은 대립 정치가 국민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불렸던 명성이 무색하게 미국에서도 반이민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종차별 갈등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둘째, 비이성적,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극렬 지지자들이 정치 세력화했다. 우리에게 개딸이나 태극기 부대가 있듯이, 미국에도 트럼프의 극렬지지자인 트럼피스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양국 모두에서 팬덤형 집단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법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정치가 판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총선에 후보로 나서고 있다. 당선되더라도 최종심에서 유죄를 받을 경우 자리를 내놔야 하는데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위법적인 정치행위 사례는 지난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폭동이 대표적이다. 특히 트럼프는 당시 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폭동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이는 선진 민주주의의 원조국 중 하나인 미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었다.

넷째, 유력 정치인의 사법 리스크가 선거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총선에 영향을 미치듯, 트럼프에 대한 형사 기소도 미국 대선에선 돌발 변수다. 이 대표는 현재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등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고, 트럼프는 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연방 특검에 의해 기소된 상태다.

다섯째, 여야의 대표 정치인들이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48%)보다 훨씬 낮은 30%대에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 대표도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인기가 높지 않다. 이번 미국 대선도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불린다. 로이터·입소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67%가 “차악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바이든과 트럼프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덜 싫어하는 후보를 뽑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양국 정치판의 분위기가 판박이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이 미국 정치의 수준을 따라간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퇴보해 한국과 키 높이를 맞춘 것일까. 확실한 답변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한때 본받아야 할 1순위였던 미국과 대등해졌다고 자랑스러워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 중에는 우리 정치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한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폭발하고 있다. 지금 정치인들에게 냉철한 자기성찰은 물론 타산지석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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