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에서 22일 마주했다. 이종섭 주(駐)호주 대사의 즉시 귀국 및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거취 문제 등을 놓고 당ㆍ정 갈등이 불거진 지 닷새 만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날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에서 열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끝난 뒤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를 참배했다. 이어 2010년 북한의 공격으로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둘러봤다.
피격 당시 함장이던 최원일 전 천안함장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전해 들은 윤 대통령은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ㆍ조작ㆍ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며 “반국가세력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서 더 많은 위로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도 “영웅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 내야겠다”고 말했다. “위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최 전 함장의 말에 한 위원장은 “저희가 잘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조작과 선동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종북 세력의 준동을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어깨를 두드린 뒤 행사장을 떠났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ㆍ정 갈등이 있다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날 오전 결정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천안함 유족들도 현장에 같이 있었다”며 “두 사람 간의 사적인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만난 건 1월 29일 대통령실 오찬 이후 53일 만이다. 당시 ‘김경율 사천(私薦)’ 논란 및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등으로 당정이 충돌하자 두 사람은 1월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갈등을 봉합했고, 6일 뒤 점심을 함께했다.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엔 유승민 전 의원도 참석했다. 국민의힘에선 최근 "중도층을 공략하려면 유 전 의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적잖다. 한 위원장과 유 전 의원의 만남이 관심을 보았지만, 자리가 떨어져 있어 제대로 인사를 못 나눴다. 대신 유 전 의원 옆엔 당 지도부인 유의동 정책위의장이 앉았다.
당 관계자는 “수도권과 중도층에 소구력있는 유 전 의원이 선대위에 가세하면 수도권 위기론을 만회할 카드가 될 수 있다”며 “유 전 의원과 가까운 유 의장이 한동훈-유승민 간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전 의원은 전날 동국대 특강에서 “공천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아직 당에서 공식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동훈 "총선 뒤 유학? 공적으로 봉사하는 일만 남아"
이날 한 위원장은 선거 뒤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언급했다.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은 한 위원장은 “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누가 제가 선거 끝나고 유학 갈 거라고 하던데, 저는 뭘 배울 때가 아니라 여러분 위해 공적으로 봉사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당정 갈등이 가라앉으면서 민주당에 대한 공세도 강화했다. 장동혁(충남 보령-서천) 사무총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한 위원장은 “이종섭 대사는 소환받은 것도, 범죄 혐의가 드러난 것도, 재판받은 것도, 기소된 것도 아직 없는데도 귀국했다”며 “정작 이재명 대표는 보란 듯 법원 출석도 안 한다. 이분들이 다수당이 되면 앞으론 법원에 나가겠나, 사법 시스템을 존중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에선 총선 낙관론도 나왔다. 취재진과 만난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목표 의석수 전망’ 질문에 “153석 플러스해서, 한 170석은 돼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고 보시라. 이제 1~2주 뒤엔 다시 상승 곡선을 그어 치고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대위 관계자는 “당의 상황 인식과 괴리가 있는, 공관위원장의 희망 사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갤럽이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동반 하락세였다. 윤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 34%, 부정 58%였다. 지난 조사와 비교해 긍정 평가는 2%포인트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1%포인트 올랐다.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민주당 33%, 조국혁신당 8%였다. 2월 5주 조사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인 7%포인트 차로 앞섰지만, 3주 만에 격차가 1%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대상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