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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앨범 낸 ‘재즈 디바’ 나윤선…"'그녀들'을 위한 헌정 앨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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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30주년 맞은 '재즈 디바' 나윤선. 사진 엔플러그

올해로 데뷔 30주년 맞은 '재즈 디바' 나윤선. 사진 엔플러그

손바닥만 한 칼림바(아프리카 민속악기)를 양손에 쥐고 건반을 튕기자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 위에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55)의 짙고 단단한 목소리가 얹어졌다.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은 즉석에서 조그만 악기와 목소리 만으로 재해석됐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나윤선이 지난 1월 발매한 정규 12집 ‘엘르’(Elles)의 타이틀 곡이다.

“3년 유학 길로 시작한 재즈 인생이 어느새 30년이 됐네요. 이제야 음악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21일 서울 강남구 뱅앤드올룹슨 매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나윤선은 기자들 앞에서 ‘필링 굿’을 직접 선보인 뒤 이같이 말했다. “제 음악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보컬리스트의 명곡을 모아보니 300곡이 넘었다. 추리고 추려 50곡까지 좁혔는데, 대부분이 여성 가수들이었다”면서 “저 역시 이분들처럼 음악과 목소리가 바로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되길 바라면서 헌정 앨범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발매한 나윤선의 정규 12집 ‘엘르’(Elles) 니나 시몬, 뷔욕, 에디트 피아프 등 전설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명곡 10곡을 재해석했다. 사진 엔플러그

지난 1월 발매한 나윤선의 정규 12집 ‘엘르’(Elles) 니나 시몬, 뷔욕, 에디트 피아프 등 전설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명곡 10곡을 재해석했다. 사진 엔플러그

앨범명 ‘엘르’는 프랑스어로 ‘그녀들’이라는 뜻이다. ‘노래’ 또는 ‘목소리’를 뜻하는 여성형 명사이기도 하다. 나윤선은 이번 앨범을 통해 니나 시몬, 뷔욕, 그레이스 존스, 쉴라 조던, 에디트 피아프 등 전설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명곡 10곡을 재해석했다.
“오리지널을 넘어서진 못할 거고, 최소한 누가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처음엔 엄두도 못 냈는데, 30년 동안 음악을 하며 용기가 났다”고 그는 말했다. “‘필링 굿’은 칼림바,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은 뮤직박스, ‘마이 퍼니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은 펜더 로즈(건반), 이런 식으로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와 감성을 조금씩 더해서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재즈는 늘 변화하는 음악…순간이 주는 의미”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여주인공으로 첫 무대에 오른 나윤선은 2001년 파리에서 재즈 보컬로 데뷔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문화예술훈장을 두 차례(2009년 슈발리에·2019년 오피시에) 받았고, 골든디스크(프랑스)·에쇼어워드(독일)·대중음악상(한국) 등을 수상했다. 전 세계 주요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는 것을 포함해 매년 평균 100회의 공연을 진행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넘기지 않고 꾸준히 정규 앨범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앨범 역시 2022년 발매한 정규 11집 ‘웨이킹 월드’(Waking World) 이후 2년 만의 신보다. 나윤선은 “음반 작업은 공연을 위한 레퍼토리 개발 차원이 크다. 제 일상은 공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윤선은 내달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30주년 콘서트를 연다.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얀 지와 협연한다. 사진 엔플러그

나윤선은 내달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30주년 콘서트를 연다.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얀 지와 협연한다. 사진 엔플러그

그의 공연 파트너는 변화무쌍하다. 최근 유럽에서 진행한 겨울 투어는 5명의 피아니스트와 돌아가면서 공연을 진행했다. 이번 새 앨범 녹음은 피아니스트 존 카우허드와 함께 했고, 내달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30주년 콘서트는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얀 지와 협연한다. 콘서트에선 이번 신보에 수록된 전곡을 선보일 계획이다.

나윤선은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연주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장르다. 같은 레퍼토리라도 피아니스트마다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느낌으로 공연에 임할 수 있다”면서 “서로에 너무 익숙해지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연주자와 함께하며 무대의 변화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나윤선은 "오랫동안 꾸준히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음악적 목표를 밝혔다. 사진 엔플러그

나윤선은 "오랫동안 꾸준히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음악적 목표를 밝혔다. 사진 엔플러그

“작지만 노래 만큼은 거인이다”(영국 가디언)
그의 공연은 현지 매체와 평단의 극찬을 받지만, 정작 나윤선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편이다. 그는 “사진이든 라이브 영상이든 무대를 기록으로 잘 남기지 않는다”면서 “피아노와 저, 그리고 관객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소편성 음악을 좋아하고, 2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이 바깥 세상과 차단되는 우리만의 시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선 같아 보이지만 매일이 다른 하루가 나온다. 재즈 역시 무대마다 달라지고, 그 순간만이 주는 기쁨과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면서다.

30주년을 맞은 그의 음악적 목표는 무엇일까. 나윤선은 “처음 프랑스 유학을 갈 때만 해도 이렇게 음악을 하게 될지 몰랐다. 예전엔 인터뷰할 때면 ‘지금 음악을 하고 있지만, 나중엔 다른 것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30년쯤 해보니 알겠다. 이제는 오랫동안 노래를 하고 싶다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부친상을 겪으며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지난 2일 별세한 그의 아버지는 국립합창단 초대 단장을 맡은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다. "한국어로 된 합창곡 레퍼토리 개발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를 보고 저도 언젠가는 우리 말로 된 아름다운 곡들을 작업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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