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부리 빼고 다 먹는 오리 한 마리 연회상 전압석(全鴨席)

중앙일보

입력

전압석(全鴨席·오리고기 풀코스)

전압석(全鴨席·오리고기 풀코스)

중국인들이 제일 즐겨 먹는 고기, 그래서 어느 부위 한 점조차 버리기 아까워 알뜰살뜰 발라 먹는 고기가 무엇일까?

우리의 경우는 역시 소고기가 아닐까 싶다. 삼겹살로 대표되는 돼지고기, 후라이드 치킨을 중심으로 닭고기도 많이 먹지만 전통적으로 또 심정적으로 아끼는 고기는 아무래도 소고기 같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샅샅이 챙겨 먹기로는 소고기를 따를 바가 없다.

중국은 압도적으로 돼지고기를 꼽을 것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양으로야 돼지고기를 넘어설 수 없고 정서적으로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또 민속적으로는 오리고기가 으뜸이다. 머리부터 물갈퀴까지 어느 부위 하나 빼놓지 않고 샅샅이 챙겨 먹는다.

중국인들의 오리 사랑은 대단하다. 도처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으니 예컨대 중국의 대부분 대도시에서는 갈고리에 구운 통오리(挂炉烤鸭)를 걸어놓은 음식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생닭집보다 많다. 그만큼 오리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소리다.

북경오리구이(北京烤鸭)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모택동의 시를 패러디해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고 오리구이를 먹어보지 않으면 평생의 한으로 남는다는 말도 있다.

사실 중국의 오리고기 먹는 방식에는 말문이 다 막힐 정도다. 기계를 분해 조립하는 것처럼 오리 한 마리를 철저히 분해해서 부위별로 하나씩 요리해 그 맛을 즐긴다. 일단 해체한 오리 중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로 꼽는 것은 껍질이다. 특히 북경 오리구이는 바삭한 껍질(脆皮)과 고기(板鴨)를 따로 먹는다. 이 때문에 관광객 중에는 살코기는 어디 가고 껍질만 주냐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 청나라 때 상류층에서는 껍질만 먹고 살코기는 아랫사람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예법이라고 했다는데 맛있는 요리 중에서도 핵심만 살짝 맛본다는 뜻이라니 음식 호사의 극치다.

중국 오리고기 중에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이런 것도 먹나 싶은 뜻밖의 요리도 많다. 먼저 오리 머리(鴨頭)다. 우리는 닭 머리를 먹지 않지만 중국인들은 머리도 따로 먹는다. 심지어 머리만 모아 놓은 다양한 요리가 있다. 마라오리머리(麻辣鴨頭) 오리머리솥찜(干鍋鴨頭) 등이 있는데 한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뜯어먹는 모습이 상당히 낯설다.

오리 목(鴨脖子)도 버리지 않고 요리한다. 오리 목만 따로 모아서 장조림(酱鸭脖子)을 담기도 한다. 소금에 절였다가 육포처럼 건조해 먹는 남경식이 유명하다. 입맛 돋우는 밥반찬과 술안주로 인기가 있다. 이 밖에 목만 따로 모아 고추, 후추, 화초(花椒)등으로 조리한 마라 오리 목(麻辣鸭脖), 오리 목 구이(烧鸭脖) 등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오리 혀만 모은 오리 혀(鴨舌) 요리는 아예 별미로 취급한다. 음식 재료를 알고 보면 거부감이 들지만 먹어보면 맛있다. 오리 혀를 전복장과 생강, 파와 함께 굴 소스 등으로 요리한 장향오리 혀(醬香鴨舌), 말린 오리 혀 볶음(風干鴨舌) 등이 있는데 강장 효과가 있다며 인기가 높다. 심지어 청나라 때 문헌 『수원식단』에서는 오리 혀를 샥스핀, 말린 해삼 등과 맞먹는 요리 재료라며 추켜세웠고 그래서인지 서태후가 오리 혀 요리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오리 머리, 목, 혀까지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으니 몸통은 말할 필요도 없다. 껍질과 살코기는 기본이고 우리가 소 막창, 대창, 곱창을 구분해 먹듯 오리의 위와 장, 간과 콩팥 등을 구분해 요리한다. 소 선지 대신 오리 피(鴨血) 선지를 먹고 오리 뼈로는 사골 국물을 내며 닭발과 함께 오리 발도 간식으로 즐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털 뽑은 오리 중에서 딱딱한 부리를 빼고는 다 먹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오리의 각 부위를 요리해 먹기도 하지만 식탁에서 오리구이는 물론 머리부터 혀와 목, 심장과 뇌, 간과 곱창, 날개와 발, 그리고 알까지 오리 한 마리를 완전히 분해해 각각의 부위를 골고루 즐기는 오리 한 상 대잔치도 있다. 전압석(全鴨席)이라는 연회상이다.

오리 한 마리를 이렇듯 부속품까지 가리지 않고 분해해 먹으니 얼핏 엽기라는 느낌도 있지만 소 한 마리를 분해해 먹으며 소가죽에 붙은 살까지 긁어 수구레 국을 끓이는 우리와 비교하면 음식문화의 차이일 뿐 편견을 가질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왜 이토록 오리고기를 즐기는 것일까? 신화와 관습까지 다양한 요인을 꼽을 수 있지만 일단 자연환경과 사육조건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한국이나 중국 모두 닭고기, 치킨을 많이 먹지만 옛날 닭은 그렇게 쉽게 키울 수 있는 가금류가 아니었다. 대신 꿩이 많았던 우리와 달리 오리는 중국에서 양자강(長江)과 호수의 물고기를 먹이로 번식했다. 게다가 오리고기가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피를 맑게 하며 심장에도 좋아 자양강장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구하기 쉬운 데다 몸에도 좋다니 황제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오리고기에 심취했다.

더차이나칼럼

더차이나칼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