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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외래종 사슴이 250마리나…토종 노루 사는 곳에 왜?

중앙일보

입력

뿔도 크고, 몸집도 최대 5배

제주에 서식하는 붉은사슴. 제주 붉은사슴은 중국 쓰촨사슴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오장근 박사

제주에 서식하는 붉은사슴. 제주 붉은사슴은 중국 쓰촨사슴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오장근 박사

제주 한라산 등 산지에 외래종 ‘사슴’이 자리 잡으면서 토종 노루 서식지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 자란 외래종 사슴은 노루보다 몸집이 최대 5배까지 크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유산본부)는 20일 "한라산 등 제주 산간 지역에 외래종 사슴 250여 마리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유산본부의 ‘제23호 조사연구보고서’에 수록된 ‘중산간 지역 외래동물(사슴) 생태연구’에 따르면 사슴은 지난 겨울철 국립공원 인근 마방목지에서 19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게 확인됐다. 또 중산간 목장 지역을 중심으로 적게는 10여마리, 많게는 20여 마리씩 집단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꽃사슴·붉은사슴 등 타 아시아권서 유입

제주 지역 산지에서 포착된 꽃사슴. 사진 오장근 박사

제주 지역 산지에서 포착된 꽃사슴. 사진 오장근 박사

이런 사슴은 중산간지역에서 겨울을 지낸 후 봄이 되면서 점차 고지대로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일몰을 전후해 먹이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산본부는 외래종 사슴 집단이 더 커지면 토종 사슴류인 노루의 주요 서식지가 잠식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 자란 사슴이 노루보다 몸집 크기가 2~5배가량 크고 뿔도 훨씬 커 먹이 경쟁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다. 또 사슴 개체수가 늘면 노루뿐만 아니라 먹이사슬과 생태환경이 일부 겹치는 오소리나 족제비·도롱뇽 등 제주의 고유한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산본부 관계자는 “노루가 경쟁 동물인 외래종 사슴을 피해 주변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정확히 계측이 이뤄지진 않았으나, 제주 서식 사슴 가운데 제주마와 한라마 사이인 1.5m 정도까지 키가 자란 것도 보였다”고 했다.

예전 제주에는 국내 고유종인 대륙사슴이 서식했으나 1910년대에 모두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제주에 서식하는 사슴류는 토종 노루를 비롯해 일본꽃사슴·대만꽃사슴·붉은사슴·엘크·다마사슴, 고라니 등 7종이다. 대만꽃사슴과 일본꽃사슴은 각각 대만과 일본에, 붉은사슴은 중국의 쓰촨성과 티베트에 주로 분포하는 외래종이다.

90년대 백록담(白鹿潭) 의미 살리려 방사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보호 중인 노루가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보호 중인 노루가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최충일 기자

외래종 사슴이 제주에 서식하게 된 것은 1992년~1993년 한 독지가가 ‘사슴도 뛰노는 한라산’과 백록담(白鹿潭) 의미를 되살리려는 취지로 3차례에 걸쳐 방사한 사슴 13마리가 번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외에 일부 농가에서 사육되던 사슴이 관리 소홀 등으로 탈출해 제주 자연에 적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희찬 세계유산본부장은 “한라산내 사슴류 서식현황과 생태특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서 추진해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보고서를 국가기록원·국립중앙도서관 등 전국 연구기관에 배부해 제주 자연보전을 위한 자료로 쓰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내 노루 개체 수는 지난해 9~10월 6개 읍·면을 표본 조사한 결과 4800여 마리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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