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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가만히 있는데, 기업 "이사 보수 한도 축소"…수퍼주총 개막

중앙일보

입력

‘수퍼 주총’ 시즌 막이 올랐다. 이번 주 삼성전자‧현대자동차‧대한항공 등 주요 기업 정기 주주총회를 시작으로 이달 말까지 2000여 개 기업이 주총을 연다. 주총의 단골 안건인 주주환원정책뿐 아니라 경영진 등 이사 보수 한도 하향, 오너 일가의 경영권 대결, 신규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눈길을 끈다.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기아 본사사옥에서 진행된 정기 주주총회. 기아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기아 본사사옥에서 진행된 정기 주주총회. 기아

가장 눈에 띄는 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에 대한 보수 총액 한도를 줄이자는 안건이다. 이전까지는 대개 기업이 이사에 대한 보수 한도를 높이겠다고 안건을 올리면, 주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기업 스스로 보수 한도를 축소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이사 보수 한도를 지난해 480억원에서 430억원으로 줄인다. SK는 220억원에서 180억원으로, LG는 180억원에서 170억원으로 축소한다. 〈그래픽 참조〉 재계 관계자는 “보수 한도 축소가 바로 보수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비용 절감 노력과 함께 경영진 스스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올해도 총수 일가의 경영권 대결로 관심을 끄는 기업들이 있다. 19일 열린 고려아연 주총에선 공동창업주 집안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33%)와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32%) 간 표 대결이 벌어졌다. 주당 5000원의 결산배당금은 고려아연이 제시한 원안대로 통과됐다.
‘캐스팅 보트’인 국민연금(8%)을 비롯한 주주 61.8%가 찬성표를 던졌다. 영풍은 주당 1만원을 주장했지만 주주들은 배당 확대보다 신사업 투자 등으로 기업가치를 더 끌어올리겠다는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정관 변경은 53%의 찬성표를 받았지만, 특별결의 요건인 참석 주주의 3분의 2를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

고려아연은 2차 전지 소재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신주 발행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하는 규정 삭제를 담은 정관 변경을 안건으로 올렸는데 영풍이 ‘기존 주주 지분 가치 희석’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업계에선 “예상대로 1대 1로 표 대결이 끝났지만, 3세 경영으로 이어지며 양측의 의견 차가 커 결국 계열 분리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호석유화학도 자사주 전량 소각 여부를 두고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일가(15.7%)와 박철환 전 금호석화 상무 일가(10.8%)가 맞서고 있다. 박 전 상무는 2022년 본인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제안했지만, 부결됐다. 올해는 “대규모 미소각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2년 안에 자사주 100%를 소각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호석화의 자사주는 525만주(18.4%)다. 박 회장측은 3년간 자사주 50%를 분할 소각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22일 주총에선 국민연금(9.27%)에 의해 결과가 갈릴 예정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총수 일가와 주주 간 신경전도 팽팽하다. 대한항공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의무 소홀”을 앞세워 반대표를 던질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주장하는 주주 이익 침해는 아시아나 인수합병이다. 앞서 2021년에도 같은 이유로 조 회장 재선임에 반대했지만, 선임안이 통과됐다. 이번에도 국민연금(7.61%)의 반대만으로는 재선임을 막기를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26.13%) 등 조 회장 우호 지분은 30%가 넘는다.

사외이사 '물갈이' 움직임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삼성전자는 사업 강화를 위한 사외이사 선임에 나선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을 신임 이사로 선임하고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재선임을 추진한다. 조혜경 한성대학교 인공지능(AI) 응용학과 교수도 신규 선임한다. 미·중 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산, 로봇 사업 강화 등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적이나 주가 개선에 대한 주주의 요구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주주를 달래기 위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추가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할 수 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들은 주총에서 이겼다고 제안된 안건을 무시할 게 아니라, 합리적 제안이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수용해 경영 실적 개선을 위한 요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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