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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상파 드라마에 한국어가 자막도 없이 나오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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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이러브유’는 한국인 유학생 남성과 일본인 사업가 여성의 사랑 이야기다. 드라마에는 한국 음식과 한국어가 자주 나온다. [사진 TBS]

‘아이러브유’는 한국인 유학생 남성과 일본인 사업가 여성의 사랑 이야기다. 드라마에는 한국 음식과 한국어가 자주 나온다. [사진 TBS]

“좋아해요.” “이 눈, 빠져들 것 같아.”

지난 1월 말부터 일본 지상파 T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 한국어가 자막 없이 흘러나온다. 드라마는 한국인 유학생 태오(채종협)와 일본인 직장 상사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의 로맨스물이다. 눈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유리는 한국어로 생각하는 태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궁금해 하다가 점점 태오의 매력에 빠져든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유리의 답답한 심정에 감정 이입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귀여워” “사랑해” 등 태오의 속마음을 유리가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로맨스에도 불이 붙는다.

드라마에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요?” “(꽃을)오다 주웠다” 등 한국식 구애 대사가 등장하고, ‘간장공장공장장’을 일본인이 따라하는 장면도 나온다. ‘K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내기 위해 TBS 내 한국인 직원인 차현지 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했다.

드라마 인기에 힙입어 극중 주인공이 먹은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아이 러브 유’ 카페가 도쿄 시부야에 생겼고,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라인 이모티콘이 출시됐다. 20일엔 현지에서 팬미팅 행사도 열린다.

배우 채종협도 일본에서 스타가 됐다. ‘횹사마’란 별명도 얻었다. 극 중 태오가 사는 집 부근은 관광 명소가 됐고, 최근 서울 북촌에서 촬영할 땐 일본 팬들이 몰려 촬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국어 대사와 한국 문화가 스며든 일본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이동규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문화 소비 방식이 ‘가공’이 아닌 ‘직수입’으로 바뀐 결과”라고 봤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콘텐트 유통이 직접적으로 이뤄지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트렌드로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어 콘텐트와 문화를 그대로 소비하는 건 예능과 음악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는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라는 리얼리티 예능을 방영했다. 한국에 온 네 명의 일본 여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 한국 남자 배우들과 연애 시리즈에서 연기하는 과정을 담았다.

세븐틴은 미니 11집 ‘세븐틴스 헤븐’으로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12일자) 정상에 올랐다. 르세라핌 또한 미니 3집 ‘이지’로 같은 차트(4일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어 앨범이 아닌, 한국어 앨범으로 거둔 성과다.

현지 음악상도 국내 가수들이 휩쓸고 있다. 뉴진스는 지난 연말 TBS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한국어곡 ‘디토’ ‘뉴진스’ ‘ETA’ 무대를 꾸미고 우수작품상과 특별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뉴진스는 또 지난 13일 일본레코드협회가 발표한 ‘제38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라이즈·르세라핌과 함께 아시아 부문 ‘베스트3 뉴 아티스트’에 선정됐다. 오는 8월 열리는 일본 대표 음악축제 ‘서머소닉 2024’에는 악뮤·베이비몬스터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한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999년 가수 보아로 일본 내 한류가 시작된 이래 현지 언어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필수였지만, 25년이 흐른 지금은 K콘텐트의 위상 등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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