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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탈출선언 일본…“완화 기조에 한동안 엔저 동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BOJ는 18~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당좌예금 정책잔고 금리)를 0.1%포인트 이상 올려 0~0.1%로 결정했다. 사진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AFP=연합뉴스

BOJ는 18~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당좌예금 정책잔고 금리)를 0.1%포인트 이상 올려 0~0.1%로 결정했다. 사진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AFP=연합뉴스

나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해온 일본은행(BOJ)이 17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풀었던 대규모 양적완화의 ‘출구’로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느리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엔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BOJ는 18~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당좌예금 정책 잔고 금리)를 0.1%포인트 이상 올려 0~0.1%로 결정했다. 2016년 2월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에서 8년 만에 탈출이다.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패키지로 추진했던 수익률곡선 제어(YCC)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도 중단한다. BOJ는 그동안 장기금리(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뛰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장기 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YCC를 운영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꺼냈던 비(非)전통적인 ‘금융완화 통화정책’ 패키지를 모두 종료한 셈이다. 이날 NHK가 “일본의 금융정책은 정상화를 향해 큰 전환을 하게 됐다”고 평가한 이유다.

수년간 꿈쩍 않던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데는 통화정책의 전환 요건으로 꼽았던 ‘물가상승→임금상승’ 순환 흐름을 확인하면서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이날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확인되고 있고, 2%의 물가안정 목표가 지속적ㆍ안정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YCC 같은 대규모 금융완화는 그 역할을 완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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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총재는 그 근거로 춘투(노사임금 협상)를 꼽았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가 지난 15일 집계한(1차) 평균 임금 인상률은 5.28%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5%를 넘어섰다.

이날 시장은 일본의 통화정책의 방향타가 ‘긴축’이 아니라, 여전히 ‘완화기조’를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BOJ가 이날 결정문에서 YCC 정책 철폐 후에도 “(장기금리가 급격히 뛸 경우를 대비해) 지금까지와 대략 같은 정도의 금액의 장기국채 매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에다 총재도 이날 “현시점의 경제ㆍ물가 전망을 전제로 하면 당분간 완화적인 금융환경이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전문가도 일본이 금리인상 속도를 당기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정책금리를 1년 내 0.25% 수준으로 올리거나, 당분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정성태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BOJ는 전통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는 서프라이즈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하반기 추가 인상 시점은 9~10월 중 한 차례, 인상 폭은 0.15%포인트 내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BOJ 입장에서도 과감히 긴축에 나서긴 어렵다. 국채금리가 뛰면 ‘국채 큰손’인 BOJ는 국채값 하락에 따른 막대한 평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경제부장은 “BOJ의 국채 보유 잔액은 전체 발행 잔액의 54%, 주식 보유 잔액은 700조엔(미실현 이익 포함 약 623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며 “일본이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날 일본 금융시장에 충격은 없었다. 오히려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지수는 이날 오전 3만6000대로 하락했다가 금리 인상 발표 직후 4만선을 회복한 4만3선에 장을 마감했다. 엔화값은 예상을 깨고 소폭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한국시각 오후 4시 40분 엔화값은 전날(달러당 149.16엔)보다 달러당 1.16엔 하락한 150.32엔에 거래됐다. '1달러=150엔'으로 밀려난 것은 9거래일 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의 이날 결정이 예측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특히 ‘당분간 완화적 금융환경이 계속된다’고 밝힌 게 달러화 매수와 엔화 매도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한국 투자자의 관심은 앞으로 엔화 흐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엔화예금 잔액은 98억6000만 달러로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한 달 사이 4억6000만 달러 늘어난 것은 투자자 상당수가 BOJ의 금리 인상으로 엔화가치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면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이번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여전히 제로금리(0%)에 가깝다”며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하(달러 약세)에 나설 때까진 엔화값은 달러 대비 150엔에 가까운 ‘엔저’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 추세가 이어져 일본과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 여행자 수가 줄어 대일 여행수지 적자 개선 가능성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체로 원·엔 환율이 상승(엔화 강세)할 때 한국 증시가 강세였다"며, "일본과의 경합 관계가 남아있는 자동와 조선 업종 수혜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마이너스를 금리를 종료하면 장기적으로 서서히 국제 금융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 투자시장의 ‘큰손’인 일본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장기적으로 해외에 나갔던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1200조원에 달하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격히 청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싼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청산 규모가 클 경우 충격을 줄 수 있지만, "마이너스 금리 해제가 미·일 금리 차 축소에 별로 기여하지 못해 엔캐리 투자는 여전할 것"(골드만삭스)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 금융시장은 일본 통화정책보다 한국시간으로 21일 새벽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더 쏠렸다. ‘끈적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통화완화 시점이 미뤄지고, 금리 전망을 나타내는 점도표가 수정될 가능성이 커져서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올해 금리 인하 전망 횟수를 4회에서 3회로 수정했다.

19일 외환시장에선 달러 강세에 원화값은 달러당 6.1원 내린(환율 상승) 1339.8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기관(-7013억원)과 외국인투자자(-2388억원)의 1조원 상당의 ‘쌍끌이 매도’에 전날보다 1.1% 하락한 2656.17에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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