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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근무, 연봉 4억에도 무소식…더 심해진 지방의료원 구인난

중앙일보

입력

18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18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충남 서산의료원은 지난 11일 진료과장을 뽑는 채용 공고를 내면서 “전국 의료원 최초로 (의료진의) 재충전과 휴식을 위해 주 4.5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겐 연봉 4억2000만 원 이상을, 순환기내과 전문의에겐 연봉 3억5000만 원 이상을 급여조건으로 내걸었다. 공고에는 ‘★최고대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중시’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해당 의료원 관계자는 “지역인 탓에 의사가 쉽게 구해지지 않아 최고 대우를 약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공백에 구인난 더 심해져"

지방의료원 19곳 의사 채용 중…공고 보니

18일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초빙 정보’ 게시판에 따르면 현재 의사를 구하고 있는 지방 의료원은 19곳으로 파악됐다. 전국에 있는 지방 의료원 35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채용을 진행 중인 셈이다. 의사를 찾는 각 과(科)는 소아청소년과(3곳)·소화기내과(3곳)·영상의학과(3곳) 등 22개 과목이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지방 의료원은 큰 병원이 별로 없는 지역에서 거점 병원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이다. 지리적 여건이나 급여 조건 등이 수도권 혹은 민간보다 불리하다 보니 그간 의사 구인에 애를 먹는 곳이 적지 않았다. 2022년 경북 울릉군보건의료원은 연봉 3억 원을 내걸고 공고를 9차례 낸 뒤에야 지난해 1월 전문의를 간신히 구했다. 소청과·응급의학과 등 8개 과 전문의를 현재 모집 중인 경기도 한 의료원의 인사 담당자는 “의료 수요가 많은 순환기내과는 지원자가 없어 연봉을 4억 원으로 올렸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며 허탈해했다.

의사 인력난에 따라 몸값도 뛰었다. 지방 의료원 19곳이 올린 채용 공고를 분석했더니 연봉은 최저 1억4000만 원(서울의료원)에서 최고 4억2000만 원(서산의료원)으로 나타났다. 인천의료원(연봉 1억9000만 원) 등 수도권 병원과 비교했을 때 충남 청양군 보건의료원(연봉 3억5000만 원), 경북 안동의료원(연봉 3억 원)과 같은 지방 의료원의 연봉이 더 높은 편이었다. 연봉 3억 원에 내과 전문의를 찾고 있는 강원 화천군 보건의료원 측은 “화천은 (1차) 의원밖에 없고 병원이 없어 의사가 많이 필요한 곳인데 교통 등 여러 이유로 의사를 구하기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 의료원들은 높은 급여 외에도 교통 접근성이나 각종 복지 혜택을 강조하는 추세를 보인다. ‘서울↔김천·구미 KTX 1시간 30분(경북 김천의료원)’ ‘관사 제공(충남 홍성의료원)’과 같은 식이다. “문의 달라”며 원장 휴대전화 번호를 공고에 적어둔 곳(충주의료원)도 있다. 김천의료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지원자가 쭉 없어 재공고만 수차례 냈다. 출퇴근이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홍성의료원 관계자는 “오피스텔 혹은 아파트 전세자금 9000만 원을 지급하는데, 요새 이 정도(관사 제공)는 필수”라고 전했다. 한 지방 의료원 인사 담당자는 “주말에 서울 갈 비행기 티켓도 주고 있지만, 의사를 못 구하는 데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의사 없어 지방 의료원 악순환”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응급의료센터료 이송하고 있다. 뉴스1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응급의료센터료 이송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진료 공백 사태로 지방 의료원의 의사 구인난이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은 지난 8일 야간·주말 당직 담당 의사를 뽑는다는 초빙 공고를 올렸다. 구인 사유는 ‘진료 공백 방지’다. 야간 당직 의사는 오후 5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휴게 1시간 포함)까지 월 7회 일하는데, 병원 측은 월급 1300만~1350만 원을 내걸었다. 병원 관계자는 “공공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걸 우려해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이 당직 의사를 채용 중”이라며 “원래도 필요했던 직군이었는데 요즘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일이 늘어나 채용이 더 힘들어졌다”고 걱정했다.

지방 의료원 인사 담당자들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방 의료원 관계자는 “지방은 생존 문제”라며 “의사 수가 늘어나면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은 “의사 수를 늘리면서 (그들이) 지역을 위해 복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창규 충주의료원장은 “전문의가 수백 명 있는 서울 대형병원과 달리 지방 의료원은 전문의가 충분하지 않아 환자들이 병원을 신뢰하지 못해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연봉이 높아 보여도 40% 이상 세금을 뗀다”며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세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8일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구인·구직 게시판'에 사직 전공의라고 밝힌 이들의 구직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캡처

18일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구인·구직 게시판'에 사직 전공의라고 밝힌 이들의 구직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캡처

한편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한 달째로 접어들면서 일부 전공의가 취업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구인·구직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이날 오후 4시까지 “사직 전공의 일자리를 구한다”는 글이 283건 올라왔다. 정부는 “전공의는 전문의 수련규정에 따라 수련병원 외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할 수 없다”며 이들의 개원과 재취업을 금지한 상태다. 다만 일부 병원에는 전공의들의 구직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채용 공고를 올렸더니 전공의라고 밝힌 이들의 지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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