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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분명히 더 늘었는데…중산층 절반이 "난 하위층"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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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부부 모두 공무원으로 일하는 A(34)씨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 범주엔 들어가지만, 고물가에 마트에서 장 한 번 보기 무서울 정도로 매달 빠듯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중산층이라고 하면 부동산 고민도 없고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집 한 채 마련은 꿈도 못 꾸는 내가 그 기준에 들어갈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최근 소득 기준 중산층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심리적 중산층’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과열과 고물가 등으로 중산층 기준에 대한 인식이 점점 상향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상대적 박탈감마저 커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활용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매년 4분기 중산층(중위소득 75% 이상~200% 미만) 비중을 확인한 결과, 2019년 61.4%에서 2023년 62.3%로 4년 새 0.9%포인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저소득층(중위소득 75% 미만) 비중은 31.3%에서 30.1%로 1.2%포인트 감소했고, 고소득층(중위소득 200% 이상) 비중은 7.3%에서 7.6%로 0.3%포인트 늘어났다. 저소득층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중산층 비중은 늘어나는 흐름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중산층의 절대적인 정의는 없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압박받은 중산층’ 보고서에서 중위소득 75% 이상에서 200% 미만을 중산층으로 규정했다. 중위소득은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 해당하는 가구 소득을 의미한다. 한국 등에서 함께 쓰이는 또 다른 기준(중위소득 50% 이상~150% 미만)으로도 2019년 65.1%에서 2023년 65.5%로 0.4%포인트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지난 4년간 중산층 비중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소득 지원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함께 조사하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살펴봐도 중산층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며 “특히 최근엔 2017년부터 근로장려금(EITC), 기초생활보장제도, 아동수당 등이 확대되면서 공적이전소득이 눈에 띄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계와 심리는 다르다. 오히려 중산층 가운데 스스로를 하위층이라 생각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에 편입됐지만, 심리적으로 여전히 하위 계층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NH투자증권이 발간한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중산층(OECD 기준)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5.6%가 자신이 ‘하위층’이라고 응답했다. 2년 전인 2020년 응답률(40.5%)보다 5.1%포인트 늘어났다. 스스로 중산층이 맞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59.4%에서 53.7%로 5.7%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1인 가구(23.8%), 미혼(31.2%), 30대(44.0%)일수록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비중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가계동향조사 중산층 비중과는 표본과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심리적 중산층’이 줄어드는 추세에 놓여있음은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중산층과 심리적 중산층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중산층 통계와 실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이미지에 차이가 크다는 점이 꼽힌다. 부동산 과열 현상 등으로 자산 가치를 중시하는 인식이 강해진 것도 한몫한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실제로 중산층의 생활을 누리고 있더라도, 부동산 보유 여부 등 본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위층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고물가도 심리적 중산층을 위축시키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19년 전년 대비로 0.4%를 기록했지만, 2020년 0.5%, 2021년 2.5%, 2022년 5.1% 등 매년 꾸준히 확대됐다. 지난해엔 3.6%로 둔화했지만, 여전히 농수산물 중심의 체감 물가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김 소장은 “요즘처럼 사과 등 장바구니 물가가 높은 상황에선 체감 소득이 더욱 위축될 것”며 “지금 다시 같은 조사를 하면 스스로 하위층이라 생각하는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SNS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통해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중산층에 대한 인식 기준도 점점 상향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해 남들의 일상을 24시간 디테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시대”라며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기준이 점점 높아지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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