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미제는 법원장이 맡는다"…행정법원장도 직접 재판 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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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장기미제사건 전담 재판부의 첫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장기미제사건 전담 재판부의 첫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2019년 5월에 재판한 뒤로 멈춰 있네요.

18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B206호 법정. 지난달 부임한 김국현(58·사법연수원 24기) 서울행정법원장이 법대에 앉아 재판을 지휘한다. 2014년에 시작됐지만 2019년에 멈춘 사건의 재판을 5년 만에 재개했다. 뒤이어 진행한 사건들도 모두 사건번호가 2018, 2019, 2020으로 시작했다. 2018년, 2019년, 2020년에 재판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1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란 얘기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재판 지연 대책’으로 도입한 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은 ‘장기미제사건 전담재판부’의 모습이다. 인사철 재판부가 빌 때 법원장이 일시적으로 들어간 경우는 있었지만 이처럼 법원 사무 분담 등 사법행정을 도맡는 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하는 건 새로운 풍경이다.

통상 법원에선 접수된 지 3년이 지나면 ‘장기미제’라 부르지만 이날 재판처럼 5년~10년된 사건들도 많다. 서울행정법원은 각 재판부의 고분쟁 장기미제사건을 모아 이 전담재판부로 보냈다. 법원장이 솔선수범해 가장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을 처리하게 되는 셈이다.

“진행하겠습니다. 관련 사건 항소심, 상고심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김 법원장은 이날 13건의 사건을 진행하며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행정소송만이 아니라 형사소송 등 관련 사건이 다른 법원 재판에 계류 중인 경우 그 결과를 지켜보느라 행정소송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행정 사건에서 재판 지연이 일어나는 대표적 이유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가 자신이 받은 징계에 불복해 2020년에 낸 교원소청심사위원회결정 취소 소송은 이날 3년 만에야 열렸는데, 해당 교수가 형사재판에도 넘겨져 그간 결과를 기다렸다고 한다. 김 법원장은 “그간 형사사건 1심 판결 결과를 보기 위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기로 한 걸로 돼 있는데, 1심 판결이 나왔으니 저희 재판을 하겠다”고 했다.

교수 측을 대리한 변호사가 “2심이 6월이면 끝나는데 기다려 달라”고도 했지만, 김 법원장은 “상고하면 또 대법원 판결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실관계에 대한 것은 형사사건에서 증거조사를 하기도 하지만, 피고 교원소청심사위원회도 사실관계를 토대로 결론에 이른 것일 텐데 그 과정을 우리가 재심사하는 것이 행정재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 근무만 네 번째인 김 법원장은 행정재판의 특수성을 강조하거나 변호사에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이날 진행된 재판 중에는 지난 1월 초등학생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들려 보내 학부모가 몰래 녹음한 것은 불법이라 아동학대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교사가 낸 정직처분 취소 소송도 포함돼 있었다.

교사 측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기 때문에 행정사건에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 법원장은 “행정재판에서는 증거능력과 관련해선 형사소송법이 아니라 민사소송법을 적용한다”며 “형사사건에서 그랬으니 행정사건에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법원장은 이날 재판 진행에 앞서 “법원장으로서도 역할이 크지만, 다른 판사와 함께 호흡하며 재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며 “정체되고 미뤄진 사건을 담당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열심히 재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일부 변호사와는 “오랜만입니다” 등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재판 시간이 두 시간을 넘어가자 “오랜만에 재판하려니 좋긴 한데 목이 조금 아프다” 등 분위기를 풀어보기도 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장 재판은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장 재판에 이어 두 번째 ‘법원장 재판’이다. 이날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도 박형순 법원장이 8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윤준 서울고등법원장도 다음 달 18일 첫 재판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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