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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47% "교사 상담 필요"…교사 6% "학부모 상담 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생 학부모 김미진(가명)씨는 3월 초부터 회사 점심도 샐러드 위주로 먹으며 다이어트 중이다. 오는 20일 예정된 학부모 총회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참석 못 했는데 올해는 고학년이 된 우리 아이가 어떤 수업을 받는지 알고 싶어서 가 보려 한다”며 “조금이라도 선생님께 좋은 인상을 드리고자 다이어트도 하고, 입고 갈 옷도 신경 쓰게 된다”고 했다.

반면 서울의 한 6년차 초등 교사 이주민(가명)씨는 며칠 전부터 학부모 총회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올해는 어떤 유형의 학부모들이 올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씨는 “새 학기마다 학부모를 만나고 상담하는 일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며 “학부모님들이 자녀의 학교 생활·교육에 관심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부 ‘진상’ 학부모 때문에 전체 학부모가 다 싫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초등 교사 “학부모, 학교 참여 불필요” 의견 많아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초·중·고교의 학부모 총회·참관 수업 등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지난해부터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를 바라보는 교사와 학부모의 인식 차이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서교연)이 초등 교사(1493명)와 학부모(4280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사들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 필요성’에 대해 5점(매우 필요) 척도 기준 평균 2.69점으로 응답했다. ‘보통’이 3점임을 고려하면,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교사가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교직 경력이 5~10년 미만(2.13점)이거나, 담임(2.57점)인 경우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불필요하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부모 “자녀 교육 위해” 학교 참여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목적을 놓고도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이 엇갈렸다. 학부모들은 학교 참여 목적으로 ‘자녀 교육 향상’(57.2%)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반면 교사 중 학부모의 학교 참여 목적으로 ‘자녀 교육 향상’을 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많은 교사들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권력 행사·학교 감시 등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설문에서 교사들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 목적으로 ‘기타’(29.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서교연은 “기타로 응답한 주관식 의견을 살펴보면 학부모 친목 도모, 권력 행사 등 다소 부정적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했다.

서울의 6년차 초등 교사 이씨는 “교사들의 방어적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자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교사의 교육 방식에 간섭하거나 사사건건 개입하는 학부모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순수하게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궁금한 학부모들도 있겠지만, 교사의 기를 꺾기 위해 교사와 상담을 하고, 학교에 참여하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했다.

학부모는 “상담 활성화”, 교사는 “민원창구 별도 마련”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교사와 학부모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한 방식도 서로 달랐다. 학부모들은 ‘학부모와 교사의 상담 활성화’(46.7%)가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해 가장 도움이 된다고 꼽았지만, 교사들은 절반 이상이 ‘민원 창구 별도 마련’(57.1%)을 선택했다. ‘상담 활성화’를 선택한 교사는 84명(5.6%)에 불과했다.

서로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학부모의 외사랑’에 가까웠다. 5점(매우 만족) 척도로 학부모 설문에서 교사와 관계는 4.13점으로 집계됐지만, 교사 설문에서 학부모와의 관계는 2.93점으로 보통(3점)에 못 미쳤다.

서울 성동구의 초등학교 2학년생 학부모 김모씨는 “혹시나 내가 ‘진상’이 되면 어쩌나 싶어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떼 쓰는 학부모도 많겠지만 아이 맡겨놓은 입장에선 여전히 ‘을’인 학부모가 더 많을 테고, 어떤 방식으로든 더 원활하게 선생님과 학부모의 소통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제주의 3년차 초등 교사도 “교사 입장에서 학부모를 환대해드리고 싶은데, 이상하고 또 위험한 분들도 있기 때문에 교사도 사람인지라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아서 안타까울 때도 많다”며 “학부모와 소통할 때 안심할 수 있는 장치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한편 해당 설문조사는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서울시교육청 내 609개 초등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지난 5일 발표된 ‘학부모의 학교참여 실태 분석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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