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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푸른 하늘 은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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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매일 밤 아기 딸을 재우면서 ‘반달’이라는 1920년대에 작곡된 한글 동요를 부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쎄쎄쎄’ 놀이하던 기억이 아른거리기도 하고, 광활한 은하수 바다에 홀로 둥둥 떠 있는 자그마한 쪽배를 토론토 야경 위에 떠올리는 것도 운치가 있다. ‘서쪽 나라’가 광복을 향한 희망을 나타낸다고 생각되어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아기에게 불러준다.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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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공해가 없어서 은하수를 더욱 생생하게 느꼈을 것이다. 우리의 전래동화는 견우와 직녀의 로맨스를 소재로 7월 칠석날에 까치가 만든 오작교라고 은하수를 설명한다. 재회할 때 기쁨의 눈물이 보슬비로 내린다고 전한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에도 견우직녀에 상응하는 전설이 있다. 흥미롭게도 핀란드-우그르 계열의 전설에서도 그와 비슷한 요소가 발견된다. 은하수를 ‘새들의 경로’(핀란드어로 ‘Linnunrata’)라 부르는 것. 철새들의 이주를 도와주는 하늘의 딸 린두 여신이 북극성과 사랑에 빠져 그가 변심해 떠났을 때 흘린 눈물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아기 시절에 헤라 여신의 젖을 먹다가 깨무는 바람에 놀란 여신이 그를 뿌리쳤을 때 우유가 하늘에 뿌려져서 은하수가 생겼다고 한다. 라틴어로 ‘우유의 길(via lactea)’은 말 그대로 ‘밀키웨이(Milky Way)’의 어원이 되었다. 또 그리스어 갈락시아스, 즉 밀키웨이는 천문학 용어로 채택되어 은하(Galaxy)를 지칭하게 되었다.

철새들이 별빛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 와서야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지만, 고대인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 사회에서 우리의 물리적 환경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심지어 우리 은하의 구조 자체에 대한 이론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신화로 승격해 이해했던 고대인들의 지혜는 아름다운 인간의 속성이라 할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