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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못갚는 서민 갈수록 는다…‘햇살론’ 21% 대신 갚아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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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해 돈을 빌린 서민들이 그 돈마저 갚지 못하자, 정책 기관이 이를 대신 갚아주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 관련 통계는 역대 가장 높은 수치까지 치솟았다. 고금리·고물가의 부담이 길어지면서 서민을 중심으로 금융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

17일 양정숙 개혁신당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햇살론15’의 지난해 대위변제율(원금을 상환하지 못해 정책기관이 이를 대신 갚아준 금액의 비율)은 21.3%로 전년 대비 5.8%포인트 급증했다.

햇살론15는 개인신용평점 하위 20%에 해당하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지원하는 서민금융상품이다. 국민행복기금이 100% 보증을 지원하기 때문에 저신용자라도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데, 연체할 경우 정책기관에서 대신 은행에 갚아야 한다. 이 때문에 대위변제율은 민간 금융권의 연체율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지난 2020년 5.5%에서 2021년 14%로 큰 폭 상승했다. 하지만 이 숫자가 20%를 넘은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햇살론15 뿐만이 아니다.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했던 저소득·저신용자 중 성실히 납부해 신용도가 개선된 사람에게 빌려주는 ‘햇살론뱅크’의 대위변제율도 2022년 1.1%에서 지난해 8.4%로 1년 새 7.3%포인트 급증했다.

햇살론뱅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금융 취약계층 중에서도 상환 의지나 능력 면에서 나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통상 햇살론뱅크를 통해 신용도를 개선해 제1금융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금융 취약계층 중에서도 청년층의 어려움은 최근 들어 더 커졌다. 대학생 등 만 34세 이하 청년층 대상의 ‘햇살론유스’의 대위변제율은 지난해 9.4%로 전년(4.8%) 대비 약 2배 상승했다. 또 저신용 근로자가 이용하는 근로자햇살론도 같은 기간 10.4→12.1%로 대위변제율이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상환금액이 비교적 소액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연 15.9%)을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대출의 연체율은 지난해 11.7%로 집계됐다.

최근 취약 계층의 대위 변제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이들의 경제 사정뿐 아니라,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금융 공급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정 최고 이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고금리로 역(逆)마진(자금을 조달해온 비용보다 대출로 벌어들이는 이자가 적은 상황) 우려가 커지자 서민금융 창구들은 대출 공급 등을 줄였다. 실제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69개 주요 대부업체의 신규 대출액은 2022년 1월 3846억원에서 지난해 9월 834억원으로 78% 감소했다.

민간 서민금융 창구가 문을 닫으면서, 과거 대부업을 이용했던 금융 수요가 서민금융으로 몰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위변제를 해주는 기금 재원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부업이나 제2금융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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