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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탈북자 모티브 ‘로기완’…연민 장사 아닐까 고민했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난 조해진은 “『로기완을 만났다』는 공감과 연대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난 조해진은 “『로기완을 만났다』는 공감과 연대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은 탈북 청년의 생존기다. 북한에서 탈출한 뒤 중국 옌지(延吉, 연길)에 숨어 사는 기완(송중기)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시신을 판 돈으로 벨기에로 떠난다. 방수포에 담긴 피 묻은 유로화를 엄마의 몸으로 여기는 기완은 한겨울 공중 화장실에서 노숙하며 돈을 아끼고, 낮에는 공원을 돌며 유리병을 모은다. 추위를 피해 찾아간 코인 세탁소에서 잠이 든 기완은 자신의 돈을 훔친 마리(최성은)와 경찰서에서 맞닥뜨리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다.

영화의 원작은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2011년)다. 기완의 연인 마리와 조력자 선주(이상희)는 소설에는 없는 설정이다. 영화가 기완과 마리의 로맨스라면, 소설은 기완의 행적을 쫓는 방송작가 ‘나’(김 작가)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

소설가 조해진(48)은 2008년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에 대한 기사를 읽고, 벨기에로 떠나 탈북인을 취재하며 소설을 썼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난 그는 “이 소설이 정치적인 시선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기완’의 실제 모델도 만났나.
“그를 취재한 기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만나진 못했다. 23살 청년이었지만 160㎝의 작은 체구였고, 경찰에 의해 벨기에의 한 고아원으로 보내진 것까지는 실제와 소설이 동일하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포함한 나머지는 상상이다.”
‘김 작가’와 조해진은 얼마나 닮았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작가의 모습을 ‘김 작가’에 녹였다. 김은 불우한 이웃의 사연을 내보내며 실시간 ARS 후원을 받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다. 방송을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연민 장사’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내 연민이 다른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조해진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개정판 표지. [사진 창비]

조해진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개정판 표지. [사진 창비]

그 계기가 ‘윤주’인가.
“그렇다. 김은 얼굴이 기형인 여고생 윤주의 후원금을 늘리기 위해 방송 날짜를 미루게 되는데 이 선의의 결정으로 수술을 미룬 사이 윤주의 혹이 악성 종양으로 바뀐다. 김 작가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난다. 그런 비겁한 면도 있다.”
김 작가는 남의 불우한 처지를 이용해 밥벌이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소설가로서 공감하나.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쓸 때는 특히 그렇다. 브뤼셀에 가서 캐릭터의 뼈대와 배경을 만들 때 ‘내가 이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그럴 때 내가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로기완이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처럼 읽히도록 글을 쓰는 것 뿐이다.”
로기완을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로기완의 고통에 기어이 다가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사회파 작가라고 생각하나.
“소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시대와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려는 사람들이 찾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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