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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영입 인재 12명의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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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4년 전 그들의 첫 등장을 기억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명의 영입인재를 소개하며 강조한 건 ‘혁신’이었다. 파란 백드롭에 ‘좋은 사람, 좋은 정치’란 문구를 걸고 맞이하는 인재마다 “소중한 인재”, “민주당이 지향하는 혁신에 꼭 맞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면면이 제법 풍성했다. 1호 인재로는 무명의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을 깜짝 발탁해 ‘보통 사람의 정치 혁신’을 내세웠다. 4호 인재론 전관예우 관행을 거부하고 교수로 지내던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을 발탁해 검찰개혁의 명분을 쌓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건 민주당의 의무”라며 오영환 소방관을 5호 인재로 영입했을 땐 다른 당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2020년 1월 7일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5호 영입 인재로 오영환 소방관(오른쪽)이 입당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7일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5호 영입 인재로 오영환 소방관(오른쪽)이 입당했다. [연합뉴스]

20명 중 비례대표·지역구로 12명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존재감 없는 초선이 속출한 21대 국회에서 이들의 입법 성과도 작지 않았다.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출신 이용우 의원은 내부자 주식거래를 사전 공시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등 금융소비자 보호 법 개정을 주도했고,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21대 국회의원 입법평가에서 경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소방관 출신 오 의원은 가연성 건축자재 사용을 막는 건축법 개정 등 임기 내내 소방 관련 입법에 집중했고,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 홍성국 의원은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법, 불법 주식리딩방 금지법 등을 통과시켜 ‘경제통’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4년 뒤 오늘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12명 중 8명이 국회를 떠나기 때문이다. 소병철·오영환·이탄희·홍성국 등 4명은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개혁을 이룰 수 없고 혼탁한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없다”(지난달 26일 소 의원)는 한계를 공통적으로 들었다.

비(非)이재명계로,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수박(비명계를 비하하는 은어)’이란 비난을 받아왔던 홍정민·이용우 의원은 경선에서 지역구 사수에 실패했다. 경기 안성에서 재선에 도전했던 최혜영 의원도 경선에서 ‘찐명’ 에 밀려 탈락했다. 이수진 의원은 컷오프됐다. 민주당 혁신의 결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깃발 아래 최근 이들의 빈자리를 속속 “이재명과 함께 혁신”을 내세운 원외 인사들이 대체하고 있다. 너도나도 혁신을 외치는데 물갈이 외엔 정확히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잘 손에 안 잡힌다. 단어의 초라한 지속가능성을 눈으로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긴 이제 혁신이란 단어만큼 인재라는 말도 정치권에선 우스운 말이 됐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옥중 창당’한 소나무당의 손혜원 전 의원,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도 ‘영입 인재’다. ‘좋은 사람, 좋은 정치’ 같은 평범한 영입식은 더 이상 주목받기도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