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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면 절대 안 잊는다" 9급→4급 공무원 인생 바꾼 독서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지난 14일 집무실에서 자신이 고안한 GC카드와, 저서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부산시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지난 14일 집무실에서 자신이 고안한 GC카드와, 저서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부산시

1995년 서른살에 일반행정 9급 공무원 시험에 통과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였다. 업무도 잘 해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6급, 5급 승진에선 동기들을 앞서더니 지난해 4급(서기관)으로 승진했다. 비결은 20년간 1000권에 달하는 독서량과 책 한 권을 카드 한장에 요약해내는 독후 활동이라고 한다. 고안한 독서법을 공유하고 싶어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책을 썼다. 허필우(58) 부산시 홍보담당관 이야기다. 지난 14일 부산시청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삶을 바꾸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독서 매진과 삶의 변화, 아내 말씀 새긴 덕”

허 담당관이 본격적으로 책을 파기 시작한 건 1999년 2월이었다. 부산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여러 사정이 있어 취업으로 진로를 틀어야 했다. 그는 “이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아내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의 저서. 지난해 12월 출간된 1쇄 2000부가 매진돼 최근 1000부를 추가로 찍었다.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의 저서. 지난해 12월 출간된 1쇄 2000부가 매진돼 최근 1000부를 추가로 찍었다.

허 담당관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1년6개월 만에 합격했다. 부산진구 개금3동 주민센터에서 업무를 시작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는 “보고서가 엉망이라고 늘 질책을 받았다. 주눅이 들었고 가족과도 자주 다투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생각 없이 살지 말라”는 아내의 핀잔에 자극받아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전까진 독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집에 아내가 사들인 책이 많았다. 제일 처음 읽은 책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신지식인이 21세기를 이끈다』는 책 속에 ‘독서 노트의 효용’을 강조한 내용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데도 매진했다”고 했다.

다독과 요약 훈련을 반복하는 사이 보고서 작성을 포함해 업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도 생겼다고 했다. 조직에서 인정받으면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그는 2000년 부산시청으로 전입했다. 허 담당관은 “바이오산업을 포함해 R&Dㆍ도시재생 같은 생경한 업무를 맡을 때마다 관련 책을 탐독하고, 요약한 내용을 동료들과 공유했다”며 “대학교수 등 업무 관련 전문가와 의견 교환을 하면서 성과도 좋아졌다”고 했다. 생물학 석사, 기술경영 박사 학위도 땄다. 그는 2011년 6급, 2018년 5급을 달고 지난해 4급으로 승진했다.

독서 카드 고안해 책 내고 특허 신청

20년간 책 1000권을 읽었다는 허 담당관의 독서는 단순히 ‘다독’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읽은 책의 제목으로 만든 마인드맵을 펼쳐 보이며 “책의 장르·주제·작가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이 표를 보면서 책 내용을 되새기고, 필요한 것을 추려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집무실에서 자신의 독서 마인드맵을 펼쳐보이고 있다. 20년간 읽은 1000권의 책 제목이 주제와 저자 등을 기준으로 정리돼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4일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집무실에서 자신의 독서 마인드맵을 펼쳐보이고 있다. 20년간 읽은 1000권의 책 제목이 주제와 저자 등을 기준으로 정리돼있다. 김민주 기자

허 담당관 독서법의 핵심은 읽은 책을 가로 15㎝, 세로 10㎝ 종이 카드 한장에 요약하는 GC(Gain Change)카드 작성이다. 직접 고안한 이 카드에 핵심문장(Copy)과 요약한 내용(Contents), 얻은 지식(Gain), 독서에 따른 생각의 변화(Change) 등 4가지를 기록한다. 그는 “실물 카드에 직접 쓰면서 각인하는 게 중요하다. 이 한장으로 책 전체 내용을 곱씹을 수 있다. 카드가 쌓이면 책 내용이 머릿속에서 연계돼 창의적 사고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GC카드 활용법을 자세히 담아 지난해 12월 출간한『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1쇄(2000부)가 모두 팔렸고, 2쇄로 1000부를 더 찍었다.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고안한 GC카드 서식과, 실제 허 담당관이 작성한 GC카드. 그는 실물 카드에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기자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고안한 GC카드 서식과, 실제 허 담당관이 작성한 GC카드. 그는 실물 카드에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기자

책 출간에서 앞서 지난해 3월엔 ‘독서카드 기반 지식공유-창출 방법’을 특허 출원했다. 심사 결과는 오는 9월 나온다. 허 담당관은 “특허를 통해 수익을 내려는 건 아니다. 다만 ‘특허받은 독서법’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독서의 힘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특허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서와 특허 출원을 기반으로 ‘독자와의 만남’ 등 강연도 시작했다. 20, 30대 청년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의 회원 숫자는 5만명에 가깝다.

‘퇴직 이후의 삶’ 주제로 새 책 준비

정년을 2년10개월 앞둔 허 담당관은 ‘퇴직 이후의 삶’을 주제로 다음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책을 쓰기 위해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 등 20여명을 인터뷰했다는 그는 “올해 출판 계약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다. 허 담당관은 “모두가 어려운 ‘고전’으로 독서를 시작할 수는 없다. 해당 분야의 가장 최근 경향이나 생생한 경험을 바탕에 둔 자기계발서는 실용적으로 도움 될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부산시 사상구 부산도서관에서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강연하는 모습. 강연에 참석한 70여명은 대부분 20, 30대였다고 한다. 사진 부산도서관

지난달 25일 부산시 사상구 부산도서관에서 허필우 부산시 홍보담당관이 강연하는 모습. 강연에 참석한 70여명은 대부분 20, 30대였다고 한다. 사진 부산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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