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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위 셰프의 음식 그대로…'재미'로 무장한 식탁이 온다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입력

최근 다이닝 업계의 눈에 띄는 트렌드는 바로 ‘펀(fun·재미) 다이닝’이다. 단순히 근사한 음식을 내는 것 이상으로, 마치 한 편의 공연을 감상하는 듯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극적 경험을 선사하는 레스토랑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정 주제로 정교하게 구성된 공간을 활용해 마치 테마파크에 방문한 듯한 감각을 선사하는 카페도 있다. 밥 한 끼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보다 확실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식탁은 흰 캔버스

식탁과 빈 접시 위에 3D 맵핑 기술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다이닝 쇼, '르 쁘띠 셰프'의 한 장면. 사진 콘래드 서울

식탁과 빈 접시 위에 3D 맵핑 기술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다이닝 쇼, '르 쁘띠 셰프'의 한 장면. 사진 콘래드 서울

지난 29일 찾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2층 레스토랑 아트리오.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과 함께 조명처럼 보였던 천장 LED 빔이 흰 식탁보를 화면 삼아 근사한 그림을 그려낸다. 식탁 가운데 놓인 흰 접시에는 코스 요리 대신 58mm ‘작은 셰프’가 등장한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앞으로 나올 음식을 만들어 내는 가상의 요리사다. 흥미를 돋우는 음악과 함께 등장한 셰프는 밭을 일구고 물을 주며 거대 당근을 키우고, 토마토를 수확하며, 자기 몸보다 큰 치즈를 옮긴다. 약 3분가량 작은 셰프의 분투가 끝나면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음식이 접시에 서빙된다.

코스마다 3D 맵핑 기술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이색 다이닝 쇼의 이름은 ‘르 쁘띠 셰프(Le Petit Chef).’ 벨기에의 스컬맵핑아트 스튜디오가 개발한 미디어 아트 다이닝으로 국내에선 콘래드 호텔이 지난해 11월 처음 선보여 오는 8월까지 진행한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콘래드 서울에 따르면 점심·저녁 코스 합해 하루 16석 규모로 진행되는 이 코스는 예약 오픈된 3월분이 거의 마감됐다. 임승환 아트리오팀 리더는 “영화관 수준의 화면과 음향 효과로 음식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며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각 코스마다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를 찾는 작은 셰프의 고군분투가 주요 내용이다. 사진 콘래드 서울

각 코스마다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를 찾는 작은 셰프의 고군분투가 주요 내용이다. 사진 콘래드 서울

장엄한 미디어 아트 결합

롯데호텔 월드점 2층의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도 미디어 아트와 다이닝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 2월 별실 5개 중 하나를 방안 가득 영상이 재생되는 미디어 파사드 룸으로 꾸며 식사 경험에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알프스 초원, 와이키키 해변, 치앙마이 풍등 등 자연 명소를 벽면 전체에 파노라마로 펼쳐 특별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안 가득 자연 명소의 이미지를 재생시켜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 롯데호텔

방안 가득 자연 명소의 이미지를 재생시켜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 롯데호텔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색다른 시각적 재미를 선사하는 시도는 파인 다이닝 업계 얘기만은 아니다. 서울 성수동의 디저트 카페 ‘모리노키세츠’는 지하 1층에 천장까지 이어지는 폭포 형태의 미디어 아트 공간을 마련해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차와 디저트를 즐기고 싶어 하는 식도락가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테마도 시즌마다 바뀌어 현재는 오로라를 배경으로 이곳의 대표 메뉴인 파르페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오는 4월에는 벚꽃 테마로 바뀔 예정이다.

장엄한 폭포 형태의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 디저트 카페의 한 공간. 사진 모리노키세츠

장엄한 폭포 형태의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 디저트 카페의 한 공간. 사진 모리노키세츠

이야기 속에 들어선 것처럼

영화의 이야기 구성단위를 의미하는 ‘시퀀스(장면)’는 최근 레스토랑과 카페의 공간 기획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됐다. 마치 영화 속에서 장면이 전환되듯 방문객의 동선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다이닝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레벨제로’는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설계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정원에서 맛보는 전채 요리에서 시작해, 오픈 키친의 바 테이블로 옮겨 메인 요리를 맛보고, 디저트는 작은 테이블 공간에서 즐기도록 했다. 오감을 일깨우는 요리와 섬세하게 준비된 기물들,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가 더해져 마치 공연 한 편을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공간을 옮겨다니면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설계된 레스토랑 레벨제로 전경. 사진 미쉐린 코리아

공간을 옮겨다니면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설계된 레스토랑 레벨제로 전경. 사진 미쉐린 코리아

공간을 활용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몰입을 유도하는 인테리어는 최근 카페 업계의 중요한 트렌드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카페 ‘메일룸’은 편지를 테마로 색다른 공간 경험을 설계했다. 편지를 부치는 것처럼 손 글씨를 적어 음료를 주문하고, 받은 열쇠를 사용해 작게 구획된 각자의 메일함을 열어 음료를 받는 식이다. 작은 소품 하나도 우체국과 편지를 연상시키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마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 속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메일룸 공간을 기획한 TDTD 장지호 대표는 “문을 넘어 내부로 들어갔을 때 완전히 반전된 느낌을 주는 ‘콘트라스트’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며 “브랜드 스토리에 맞춰 잘 기획된 공간은 방문객들에게 음식 외에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콘텐트”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카페 ‘보잉’은 비행기 내부에 들어선 듯한 실감 나는 인테리어와 기내식을 먹는 듯한 메뉴 구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편지를 테마로 색다른 공간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카페. 사진 메일룸

편지를 테마로 색다른 공간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카페. 사진 메일룸

한 끼에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말 ‘2024 외식업 트렌드’로 ‘식사격차’를 꼽은 바 있다. 불황기와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과 돈을 최적화해 배분해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각 끼니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평소에는 배달이나 한 그릇 음식으로 시간과 돈을 최대한 절약하지만, 주말이 되면 매력적인 한 끼를 위해 긴 웨이팅과 큰 예산을 들여 만족스러운 다이닝 여정을 경험하려는 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공간이나 미디어 아트 등을 활용해 재미있는 식사 경험을 하려는 ‘펀 다이닝’ 움직임은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책 『트렌드 코리아』의 최지혜 공저자는 이를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로 설명한다. “한정된 자원인 돈(가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처럼, 24시간으로 한정된 시간을 구조 조정하듯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움직임”이라며 “한 끼를 즐기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도 맛있는 음식에 공간·아트 등 근사한 경험 거리를 더해 최대한의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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