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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자아' 있을까…'공각기동대' 35년 전 소름끼치는 대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피소드0 '공각기동대'(1989) 시로 마사무네

▶세줄 요약  

-인공지능이 자아를 갖추면서 자신을 '인간'이라고 정의할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공지능도 인격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의 기억과 감각을 모두 데이터화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복사까지 가능해진다면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현실이라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상자 속의 뇌'가 발하는 전기적 신호에 반응하는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면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 공각기동대 1권.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만화 공각기동대 1권.

▶핵심 내용

인공지능(AI)도 인격을 가질 수 있을까. 20세기 말부터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인간의 뇌를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신체를 대신할 수 있는 로봇공학이 극도로 발달할 경우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사이보그 몸체에 인간의 뇌를 넣는다면? 인간의 몸에 인공지능을 결합한다면? 인간의 뇌를 완전히 디지털화해서 온라인에 올려놓는다면?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복사해 놓은 나의 생체 데이터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런 주제를 담은 과학소설(SF) 분야의 고전 중 하나가 『공각기동대』다.

1989년부터 시로 마사무네가 만화 잡지에 연재한 SF 만화 『공각기동대』는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만든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하다. '강화복을 입고 싸우는 특수경찰'을 의미하는 공각기동대는 일본 총리 직속의 특수부대 '공안 9과'의 별칭이다. 핵전쟁이 끝난 2029년을 배경으로 온라인에서 자연 발생한 인공지능이 자신을 인격체라 규정하고 망명을 요청하는데서 시작해 과연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파고든다. 원작 만화는 공안 9과의 행동대장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좌를 중심으로 한 우당탕탕 수사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지만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훨씬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다. 주제를 생각한다면 애니메이션만 감상해도 충분하다. 멋진 음악과 대사, 그리고 세기말 홍콩의 풍경에서 따온 미래 도쿄의 모습 역시 멋지다.

주인공 쿠사나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의체(사이보그 몸체)를 사용한다. 뇌를 튼튼한 케이스에 넣어 밀봉한 다음 나노 컴퓨터를 활용한 맨-머신 인터페이스(고스트)를 통해 기계 몸체와 연결한다. 뇌와 나노 컴퓨터를 합치는 전뇌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부터가 기계인지 모호하다. 쿠사나기는 "사실 내 진짜 뇌는 벌써 죽어서 깡통(쉘) 안에서 썩어버렸고 지금의 나는 '나는 쿠사나기 모토코다'라 생각하는 인공지능(고스트)이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주제를 생각한다면 일본어판 제목 '공각기동대'보다는 영문판 제목 '고스트 인 더 쉘(the ghost in the shell)'이 훨씬 잘 어울린다. 이 제목 자체가 길버트 라일의 '기계 안에 귀신(the ghost in the machine)'에서 영감을 얻었다.

공각기동대는 의체를 해킹해 조종하는 '인형사'의 등장에서 시작한다. 의체에 들어간 채로 쿠사나기에게 잡힌 인형사는 자신이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라며 망명을 요청한다. 외무성에서 타국의 의체를 해킹하기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자아를 갖추면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외무성 소속인 공안 6과는 이를 회수하기 위해 9과를 습격하고, 간신히 인형사의 의체를 가지고 달아난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접속해 융합한다. 인형사는 자신을 생명체라 주장하지만, 특성상 자손을 남길 수 없기에 자신의 닮은꼴인 쿠사나키와 융합해 네트워크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나려고 한 것이다. 추격해 온 공안 6과의 저격수가 의체를 모두 파괴하지만 동료의 도움으로 쿠사나기의 전뇌는 어린이 모습을 한 의체에서 눈을 뜨게 된다.

"어린 아이일 때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여기에는 인형사라는 프로그램도, 네가 아는 쿠사나기라는 여자도 없어." 쿠사나기는(혹은 그의 진화 생명체는) 동료 형사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메갈로폴리스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한다. "자, 그럼 어디로 가볼까... 네트는 광대해."

▶TMI

"인간에게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무언가(영혼, 정신, 마음)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기계 안에 귀신(the ghost in the machine)'이 들려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일상언어학파의 창시자로 꼽히는 길버트 라일은 1949년 저서 『정신의 개념(The Concept of Mind)』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물질적인 재료로 이뤄진 육체와 영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정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 르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을 비판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육체가 선박이라면 영혼은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라일은 몸과 마음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두 개의 실재가 있고, 둘 사이에 신비로운 연결을 통한 인과적 상호관계가 벌어진다는 생각을 배격했다. 같은 범주에 속할 수 없는 정신과 몸을 동일한 두 실체로 분리해 놓으니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정신의 활동에서 비롯한 말과 행동 같은 신체적 행위가 바로 하나의 실재라고 본다. 우리가 누군가를 '지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정신 활동이 아니라 재치있는 글을 쓰고, 사회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하는 행동을 놓고 평가한 결과다. 라일은 이런 논증을 통해 인간이 '귀신이 조종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70년도 전에 나온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에야 번역됐다. 굳이 구하기도 쉽지 않은 책을 들고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공각기동대』가 인공지능과 사이버스페이스의 원조는 아니다. 미국의 SF 작가 윌리엄 깁슨이 1984년에 출간한 『뉴로맨서』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를 널리 알리며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영화 '매트릭스(1999년)' 등에 큰 영향을 줬다. 뉴로맨서는 '뉴로(신경)+네크로맨서(사령술사)'의 합성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떠도는 인공지능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의문은 미국의 전설적인 SF 작가 필립 K. 딕의 단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에서 잘 다뤘다. 1980년대 이후 사이버스페이스와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커졌음을 잘 보여준다.

『공각기동대』가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쿠사나기의 원래 뇌인지, 아니면 의체에 깃든 고스트인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과감한 해답을 내놓은 점이다. 영혼, 즉 자아를 정의하는 것은 뇌세포의 전기적 현상이건 나노 컴퓨터에서의 전자의 흐름이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쿠사나기의 기억과 자신을 쿠사나기로 정의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그게 바로 쿠사나기라는 입장인 셈이다. 게다가 광대한 네트워크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이후 인터넷 세상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최근 인공지능의 약진과 온라인 공간의 확대를 35년 전에 예언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까지 내놓은 것이다. 소름끼치는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2004년 내놓은 속편 '이노센스', 원작에서 쿠사나기가 인형사를 만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진행되는 TV용 애니메이션 시리즈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원작,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카미야마 켄지의 SAC에 이은 제4의 공각기동대인 'ARISE', 이를 바탕으로 한 신극장판 등 다양한 스핀오프 작품과 2017년 스칼렛 요한슨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을 리메이크한 실사 영화 등이 있다. 원작과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아쉽다면 SAC까지는 추천할 만 하다. 할리우드 실사 영화는 안 보는 편이 나을 듯.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는 2017년 정식으로 번역 출판됐다. 1권 THE GHOST IN THE SHELL, 2권 MANMACHINE INTERFACE, 1.5권 HUMAN ERROR PROCESSER의 세 권으로 구성된다.

인트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에피소드 0 인공지능은 인격을 가질 수 있나 『공각기동대』

에피소드 1 인류의 기원을 찾아서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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